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11월 7일(첫 토요 성모신심) 믿음 (+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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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7일(첫 토요 성모신심) 믿음

 

그날 예수님의 강의를 듣던 한 여자는 그 가르침에 감탄하고 감사했다. 그는 저런 아들을 둔 그 어머니를 부러워했다. 엄마들은 다 그런가 보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루카 11,27).”하고 외쳤다는데, 한국말로 번역하면 ‘선생님 어머니는 참 복도 많으십니다.’ 혹은 ‘선생님 어머니는 참 기쁘시겠어요.’ 정도가 될 것 같다.

 

‘고맙습니다.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죠.’ 정도의 답례를 기대했는데,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합니다(루카 11,28).”하시며 좀 생뚱스럽게 대답하셨다. 이는 논리적인 추론의 단계를 몇 개를 뛰어넘은 답변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당신이 어떻게 어머니의 태안에 자리 잡게 되었는지, 당신이 누구인지, 그래서 당신의 운명이 어떤 것인지 알고 계셨음을 암시한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성모님의 몸에 잉태되셨는데, 그것은 그분의 순종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하느님의 약속이었다. 하느님을 믿는 모든 이들을 다스릴 단 한 분의 영원한 임금이 오신다는 것이었다(루카 1,32-33). 마리아님은 어려서부터 그걸 들었고 믿었다. 그리고 그날, 들은 대로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났고 믿고 따랐다.

 

일반적으로 철학자들은 신학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신학자들은 결정적인 지점에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단계를 뛰어넘기 때문이다. 신학은 믿음에서 시작하는 학문이라서 그렇다. 사실 우리 교우는 모두 신학자다.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느님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하며 묻고 생각하는 게 신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학자들이 비판하는 대로 우리는 어느 지점에서 또 뛰어넘을 수밖에 없다. 남자의 도움 없이 어떻게 임신이 가능하며, 말을 안 들어 스스로 죽음을 초래한 피조물을 위해 창조주가 죽는 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

 

그날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님께 했던 것은 설명이라기보다는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은총을 받으라는 권고였다. 마리아님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다 이해한 게 아니라 하느님을 믿고 신뢰하셨다. 그래서 충실한 종의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랐다(루카 1,38). 그 이후 그분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우리는 잘 안다.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들의 연속이었다. 하느님의 아들이 죄인으로 정말로 죽고 묻히는 사건까지 목격해야 했다. 그 대답의 의미가 그런 것인 줄 미리 아셨으면 아마 못하겠다고 하셨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분은 믿으셨다. 천사가 전해준 말에 의하면 당신 아들은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 없었다. 천사가 지어 준 이름대로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했다.

 

우리는 믿는다, 하느님이 나를 그리고 세상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그런 일이 이루어지는지 모르지만 하느님은 반드시 승리하신다. 믿으니 그대로 따른다. 성직자가 아니라 교회의 가르침을 믿고, 공동체가 결정한 대로 따른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지금 내가 여기서 하느님의 뜻을 들을 수 있는 길은 그 두 가지뿐이다. 잘못된 결정이어도 내가 아는 건 그게 전부였음을 주님은 아실 테니 쓸데없는 걱정이나 두려움은 없다. 세상에서 비난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주님 앞에서는 편안할 거다. 들은 대로 믿고, 결정한 대로 실천했으니까.

 

예수님, 저도 주님처럼 행복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손에 쥔 모래알처럼 사라지는 가짜 행복이 아니라 죽음도 반가운 참 행복을 바랍니다. 주님은 그렇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 순례를 잘 마칠 수 있게 끝까지 저를 도와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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