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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5월 3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하느님 만나기

이종훈

5월 3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하느님 만나기 

 

예수님은 이 땅에서 한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마음으로 그분의 일을 하셨다. 그분은 볼 수 없는 하느님을 볼 수 있게 해 주신 분이셨다. 그런 분과 몇 년간 공동체 생활을 했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보았다고 증언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요한 14,8).”라고 청했던 것을 보면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에 감탄하고 기적들 앞에서 놀랐겠지만, 그분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제자들이 어리석어서 하느님을 눈앞에 두고도 그분을 뵙게 해달라고 청했을까? 아니면 그들이 생각하는 하느님의 모습과 참 하느님이 다르기 때문이었을까? 아마 두 가지 모두가 그 어이없는 청원을 하게 했던 이유일 것 같다. 우리는 하느님이 참 좋으신 분이기를 바란다. 모든 죄를 다 용서해주시고, 내가 비록 못하고 부족하고 자꾸 유혹에 걸려 넘어져도 당신께 자비를 구하기만 하면 바보처럼 그전의 나의 모든 불충실을 다 잊어버리고 용서하시고 어깨를 두드려 주시는 분이기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하느님은 철두철미하고 모든 것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강력한 군주의 모습일 것이라고 그리고 마지막 날 심판대에 근엄하게 나의 지난 과거를 다 알고 있는 공정한 재판관 같은 모습일 거라고 생각한다. 바라는 하느님과 상상하는 하느님의 모습이 다르다. 마음의 하느님과 머리의 하느님이 다르다.

 

솔직히 하느님보다는 몇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더 보고 싶다. 그분은 내게 언제나 지지와 사랑을 보여주셨다. 마지막 날까지도 내 걱정을 하신 분이셨다. 이런 분 말고 누구를 그리워할 수 있을까? 이런 마음을 아시는 하느님은 서운하시겠지만, 그리고 하느님을 바라보시는 어머니는 민망하시겠지만, 이게 솔직한 내 마음이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은 하느님은 그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고 마지막까지 나를 위해 희생하실 분이라고 가르친다. 죄인을 위해서 자신의 아들까지 희생시키는 어리석은 부모는 없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래서 믿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이런 하느님은 오늘도 우리 안에서 사신다. 하느님은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꽁꽁 숨어계시지도 않는다. 5월 신록의 아름다움에서 그것을 만드신 분의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비록 많지는 않아도 아름다운 사람들에 대해 전해 듣거나 그들을 직접 만나기도 한다. 말 못하는 자연이지만 하느님을 드러내고 있고, 사람이지만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다. 예수님도 한계를 지닌 인간이셨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하셨고, 그분의 일을 하셨다. 예수님은 긴 수염에 기다란 하얀 옷을 입은 잘 생긴 아저씨가 아니다. 그분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우리 안에서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계시다. 그리고 그분은 내 안에서도 그렇게 계시고 일하시고 싶어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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