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나해 1월 31일(연중 제4주일) 하느님 얼굴 예수님(+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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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1월 31일(연중 제4주일) 하느님 얼굴 예수님 

 

영적 여정을 뒤돌아보면 크게 회심한 때가 몇 차례 있다. 통회하고 뉘우치는 때라기보다는 하느님을 더 잘 알게 된 계기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다. 그 첫 번째 회심은 아버지 하느님에서 어머니 하느님으로 바꿔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느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성(性)이 없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 하느님께 붙이는 수식어들 대부분은 여성적이다. 남성적인 수식어라고는 전지전능하신 분, 만군의 주님 정도다. 어머니 하느님, 이모, 삼촌 하느님, 사랑하는 친구 하느님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우리가 하느님을 찾은 게 아니라 하느님이 먼저 우리를 부르셨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느님은 너무 크신 분이라서 사람은 하느님을 직접 대면할 수 없었다. 그분은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당신 백성들을 보호하셨고, 계명을 알려주실 때도 불에 타오르는 산 가운데, 어둠 속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로 말씀하셨다(신명 5,23).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을 보면 죽게 될 것이라고 한 게 괜한 소리가 아니다. 오직 모세만이 그런 분과 대화하고도 죽지 않았다. 백성들은 너무 무서워서 그 큰 불도, 어둠 속에서 들리는 천둥 같은 소리도 듣지 않게 해달라고 청했다. 하느님도 그것을 인정하셨다. 그래서 그 대신 예언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신명 18,17-18).

 

하느님은 노아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이후 큰 홍수로 피조물들을 쓸어버리지 않으셨고(창세 8,21; 9,11.15), 모세와 그 백성에게 약속하신 대로 사람의 입으로 말씀하셨다. 백성들이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아도 그들을 쓸어버리지 않으시고 계속 예언자들을 보내셨다. 마지막에는 아드님을 보내셨다(마르 12,6). 때가 차자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다(갈라 4,4). 이제 하느님께는 남은 카드가 없을 것 같다. 다음에 하느님이 마지막 카드를 꺼내신다면 그때는 말 그대로 마지막이다.

 

세상은 몰라도 우리는 이 역사를 다 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더러운 영들을 단 번에 알아보고 소리를 질렀다.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마르 1,24).” 사람들이 그분의 가르침에서 다른 율법 학자들과는 달리 큰 권위를 느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마르 1,22). 예수님의 목소리가 우렁차고 근엄해서도 다른 새로운 율법을 가르쳐서도 아니었을 거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은 곧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느님은 눈을 멀게 할 정도로 밝은 빛이시고, 천둥소리 같은 무게의 권위로 말씀하신다. 예수님 안에 이 모든 것이 있다. 그분은 우리에게 엄마처럼, 이모처럼, 친구처럼 부드럽고 친근하게 다가오시고 종처럼 우리를 섬기시지만 사실 그분은 이런 하느님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 제대 앞에 고개 숙여 깊은 절을 하며 최고의 예의를 갖추면서도, 감실 성체 앞에서 속내를 다 털어놓고, 고해소에서 부끄러운 죄를 다 고백할 수 있는 거다. 알아내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죄도 다 용서해달라고 청할 수 있는 거다.

 

예수님, 주님은 하느님 자비의 얼굴이십니다. 여기서 사는 동안 주님과 친해지지 않으면 그날 하느님을 얼굴을 맞대고 뵐 수 없을 겁니다. 정말 눈앞이 캄캄해지고 숨이 멎을 겁니다. 지금이 회심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구세주 하느님을 그렇게 사랑스러운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소개해주시니 모든 사람이 하느님을 쉽게 부르고 만날 수 있습니다. 아드님과 더욱 친밀해지게 도와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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