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하느님의 길(부활 5주일, 5월 14일)

이종훈

하느님의 길(부활 5주일, 5월 14일)

 

태국인 이주민 노동자를 돌보는 사도직을 추진하고 있는데, 쉽지 않습니다. 통계상으로는 필리핀 노동자들보다 더 많은데도 민족성 때문이지 공동체를 이루지 않기 때문에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어떤 신자분이 이 일에 관심을 보여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해나가는데, 그분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신부님, 합법적으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만 돌보시는 거죠?” 이 질문에 너무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웃었습니다. 그들의 불법성을 생각해보지 않아서 당황한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과 어떻게 대화하고 어떻게 설득시켜야 할지 막막해서였습니다. 마치 갑자가 거대한 장벽을 만난 것 같았습니다.

 

국가는 그들을 불법체류자라고 부르지만, 그들을 돕는 사람들은 미등록노동자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법을 어긴 범죄자가 아니고 나라에 아직 정식으로 신고하지 못한 이들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어떤 자리에서 어떤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들을 범죄자 혹은 미등록자로 대하게 됩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법이 있었고, 그 법은 곧 자신의 구원과 직결되었습니다. 법을 어겨 범죄자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하느님께서도 구원해주시지 않아 절망하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느님의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는 죄인들뿐만 아니라 실제로 악행을 한 죄인들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당신에게 그들은 심판과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 치유와 위로로 구원해주어야 당신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권력자들과 기득권자들은 그런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위험한 인물로 만들어서 그들의 세상에서 몰아냈습니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서 있고, 어떤 마음을 지녔느냐에 따라 이웃과 세상이 다르게 보이고,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을 알아보거나 몰아내게 됩니다.

 

그들은 범죄자가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서 그리고 부모와 가족들을 위해서 가족과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입니다. 혹시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한국의 상황과 법에 대한 무지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도 하늘 고향을 떠나 땅으로 내려오셨고, 죽음의 위협을 피해 이민을 가셔야 했습니다. 우리 가까운 조상들도 먹고 살기 위해서 미국으로 브라질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 신자분의 시각으로 보면 우리 조상들도 모두 범죄자가 될 겁니다. 하지만 우리 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분들의 그런 선택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바라보면 그들은 더 이상 법을 어긴 범죄자들이 아닙니다. 이국땅에서 말도 못하고 거의 노예처럼 일하고 살아야 했던 우리 조상들에 대해 깊은 연민을 지니듯이 그들에게도 그렇게 대하는 것이 정의롭습니다.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그를 단죄하기 전에 그의 입장이 되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똑같은 죄를 고백하는 어쩔 수 없는 자기 자신의 한계를 보고 인정해야 합니다. 결국 그를 단죄한다면 자신도 똑같이 단죄 받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잠시만이라도 자신에게서 나와 밖에서 그와 자기 자신을 보면 그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무조건적이고 무한한 용서와 사랑 그리고 자비입니다.

 

우리나라는 며칠 전 지난겨울에 시작된 변화의 여정, 옛것을 벗어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일을 마쳤습니다. 새 대통령의 행동들이 신선하고 파격적이라고 연일 보도합니다. 국민들이 원했던 것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당연한 일입니다. 성직자, 수도자가 높은 지위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로 세상에 봉사하는 사람이고 하느님께서 먹여 살려주시는 사람이라면, 공무원은 국민들을 위해 일하며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그 보수를 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국민들과 가깝게 다가와 낮은 자세로 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성직자 수도자가 높은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인간이 되셔서 사셨음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새 대통령은 소통과 통합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대통령 개인의 바람이 아닙니다. 국민 모두의 바람입니다. 서로 성향이 다르지만 바라는 것은 같습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 수 없거니와 그래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바람 안에서 하나가 될 수는 있습니다. 그것은 공평, 원칙, 상식, 남북통일입니다. 같은 바람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졌어도 얼마든지 대화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고 진리가 아님을 안다면, 생각이 다른 이웃을 적으로 여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것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방의 삶의 자리로 들어가 보면 우리의 대화는 훨씬 부드러워지고, 나아가 서로에게 위로해 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법대로, 죄대로 다루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셔서 우리를 더욱 이해하셨고 우리의 죄를 없애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그 길이 우리 모두가 가야 하는 길이고 또 우리 모두가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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