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나해 2월 28일(사순 제2주일) 하느님을 만나는 곳(+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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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2월 28일(사순 제2주일) 하느님을 만나는 곳 

 

“주님, 당신 얼굴을 찾으라 하신 주님을 생각하며, 제가 당신 얼굴을 찾고 있나이다. 당신 얼굴 제게서 감추지 마소서.” 오늘 전례 입당송이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당신 얼굴을 찾으라고 하셨다. 하느님이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니 우린 그분을 찾아 만날 수 있다. 물론 형제자매나 자녀를 만나듯이 하느님을 뵙는다는 뜻은 아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 전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데리고 산에 오르셨고, 거기서 당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분의 옷은 새하얗게 빛났는데, 세상 그 어떤 것도 그보다 빛날 수 없었다고 했다(마르 9,3). 이 세상에 속한 분이 아니라는 암시다. 그러나 그 이후 예수님이 어떤 일들을 겪으셨는지 잘 안다. 그보다 더 비참하고 허무할 수 없게 예수님은 수난을 겪고 돌아가셨다. 과연 십자가 위 예수님의 모습에서 구세주 하느님의 얼굴을 찾을 수 있을까? 저렇게 비참하게 패배한 약한 사람 안에서 하느님을 뵐 수 있을까?

 

주님의 영광스러운 부활의 승리를 말하기 전에 그분이 십자가를 지셨고 수난을 겪고 돌아가셨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바오로 사도가 주님께 들었던 그의 약함 속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힘을 말한다. 가시처럼 자신을 괴롭히는 그 약점을 치워달라고 했을 때 주님께서는 오히려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의 힘이 자신에게 머무르게 하려고 기쁘게 자신의 약점을 자랑했다(2코린 12,9).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은 굴복이나 패배가 아니라 순종이고 승리였다. 당신은 피하고 싶었고 그러실 수 있었지만 그보다는 아버지를 더 사랑하셔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셨다. 이렇게 쓰기는 하지만 이해할 수 없고, 자식이 없으니 상상도 되지 않는 두 분의 사랑이고, 아들까지 내어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다.

 

아버지는 손주 손녀를 끔찍이 사랑하셨다. 조카들이 말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이 말하는 건 거의 다 들어주셨던 거로 기억한다. 사랑 앞에서 한 없이 그리고 끝까지 작아지고 약해지셨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했다. 자신이 아들 대신 제물이 되면 안 되겠냐고 청하거나 도망칠 법도 한데 그는 진짜로 이사악을 찌르려고 했다. 어렵지만 상상해보면 하느님의 명에 따라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은 역설적이게도 하느님 말고는 기댈 곳이 없었을 것 같다. 그는 철저하게 가난하고 약해졌다. 아들을 찌른 후에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느님의 명을 따랐다. 그리고 이사악은 죽지 않았고 하느님은 그에 큰 축복을 약속하셨다.

 

하느님은 그렇게 그의 믿음을 시험하셨다(창세 22,1). 믿음은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아들보다 더 중요했다. 하느님은 이사악이 죽는 걸 바라지 않으셨다. 하느님은 당신의 자녀인 우리가 고행하고 당신을 위해 희생하기를 바라시지 않는다. 아버지도 내가 수도원에서 고생한다고 많이 속상해하셨다고 들었다. 하물며 우주 만물이 당신 것인데 하느님이 그깟 것들이 왜 필요하시겠나. 그런데도 우리가 극기하고 보속하고 희생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경향 때문이고, 나를 비참하게 하고 이웃을 괴롭히는 거짓 자아의 노예 생활을 청산하기 위함이다. 사랑받고 인정받으려는 욕구, 안전을 찾아 헤매는 불안함, 지배하며 군림할 힘을 얻고자 애쓰는 그 노예 생활에서 탈출하기 위함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하느님 말고는 기댈 곳이 없이 가난해져야 하고, 하느님이 마음이 아파 직접 도와주지 않을 수 없게 약해져야 한다. 시끄러운 곳과 힘이 불끈 솟는 곳에서는 하느님의 얼굴을 찾을 수 없다. 그 반대로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이해할 수 없는 곳, 아무 힘도 쓸 수 없는 곳에서 하느님은 당신의 얼굴을 보여주신다.

 

예수님, 그 산에서 주님의 진짜 모습을 보았던 세 제자는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서로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그들 중 하나입니다. 힘을 빼려 하지 않으니 약해지는 걸 모르고, 제 뜻을 고집하니 하느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기도는 가슴만 뜨거운 빈 말이 됩니다. 죽지 않으려고 하니 되살아난다는 게 저와는 상관없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약한 곳에서 드러나는 주님의 힘, 그 안에 계신 하느님의 얼굴을 찾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약해지고 가난해지는 걸 겁내지 않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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