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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나해 6월 26일(영원한 도움의 성모 축일 경축 이동) 이콘과 우상(+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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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6월 26일(영원한 도움의 성모 축일 경축 이동) 이콘과 우상

한 외국 형제가 영원한 도움의 성모 이콘을 묵상하고 도전적인 글을 올렸다. 그는 이콘을 우상과 비교했다. 그가 탈출기 32장의 금송아지를 거론하며 제시한 우상의 특징은 세 가지였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졌고, 눈에 보이고, 예식의 중심이고 후에 문화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콘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이 제작했고, 눈에 보이고, 예식의 중심이 되고 거기에 성모님 신자라는 오해를 살 정도로 교우들은 성모님을 좋아한다.

그러면 이콘과 우상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구원의 능력이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소 조형물은 힘과 풍요를 상징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힘도 없고 우리를 풍요롭게 해주지 못한다. 눈은 있으나 보지 못하고, 입은 있으나 말하지 못한다. 근육질의 팔과 다리를 가졌지만, 우리를 도와주지 못한다. 반면에 이콘은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살아있는 영적인 실재들을 가리키고 있다. 이콘의 인물 얼굴과 모습, 시선과 자세, 구조와 색깔 등의 모든 상징적인 요소들은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말한다. 그분이 그렇게 생기셨다는 뜻이 아니라 그분은 그런 분이라는 뜻이다. 그 이콘 앞에서 기도하는 우리는 예수님과 성인들과 같은 영적인 실재들과 실제로 소통한다. 오래전에 그 이콘 제작자가 기도하고 묵상하며 본 것들을 지금 여기서 보며 영적인 세계로 들어간다. 그것을 통해 세상은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는 힘을 얻고 희망할 수 없는 곳에서 희망을 가질 정도로 넉넉해진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 이콘에서 두드러진 인물은 역시 성모님이다. 이콘 제목 그대로다. 그리스말을 모르고 교우가 아니더라도 그 그림에서 누가 성모님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이 이콘을 보자마자 시선이 머물 수밖에 없는 곳은 성모님의 눈이다. 그분은 언제나 나와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그분은 오른손으로 예수님을 가리키고, 예수님은 다시 하늘 어딘가를 바라보신다. 성모님은 방황하는 나를 당신 눈으로 붙들어 세우시고 구세주 예수님을 알려주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시 나를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느님께로 이끌어 주신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고 성모님은 말씀하시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구원의 능력 말고 결정적인 의문이 하나 남는다. 그것은 이타성(利他性)이다. 예수님은 남을 위해 사셨다. 그런데 극단적인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자살폭탄테러도 역시 이타적이다. 그도 자신이 거룩한 죽음을 선택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가 믿었던 신과 내가 믿고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다른가? 그 답은 이콘의 두 천사가 들고 있는 수난과 죽음의 도구들 안에 있다. 테러범은 자신을 희생하여 이웃을 죽였지만, 예수님은 당신을 희생하여 이웃을 살렸다. 그들은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박해자들과 맞서 싸웠지만 우리 순교자들은 박해자들을 피해 척박한 곳으로 가서 숨어 살았다. 신앙을 지키고 그대로 살기 위해서였다.

우상은 사람이 만든 것이라서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이스라엘 민족이 황금소를 만들었던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조급해지고 불안해졌기 때문이었을 거다. 하느님을 만나러 산에 올라간 모세는 한 달이 넘도록 내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중 누가 그들을 비웃고 나무랄 수 있을까?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삼십 년 넘게 사시며 우리가 그렇다는 걸 잘 아셨다. 그런 우리를 당신 어머니에게 맡기셨다(요한 19,26). 어머니를 우리에게 맡기신 게 아니라 우리를 어머니께 맡기셨다. 하느님이 맺어주신 관계이니 우리는 의심 없이 그분을 엄마, 어머니라고 부르며 우리의 불안과 조급한 마음 그리고 바라는 것을 모두 말씀드린다. 미신적이고 기복적이라고 비난받아도 그렇게 한다. 엄마의 처지를 살피며 청하는 아이들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어머니께 청하면 그분은 나의 이 가난해진 마음 안에 예수님을 낳아주신다.

예수님, 그래도 의문이 하나 더 남습니다. 감각과 지성 등 모든 것을 멈춘 제가 향하고 있는 곳이 주님 계신 곳이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주님만이 유일한 중재자라고 믿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저희를 아드님께로 이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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