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나해 11월 14일(연중 제33주일, 가난한 이의 날) 주님의 길(+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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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11월 14일(연중 제33주일, 가난한 이의 날) 주님의 길
사도들과 예수님을 좋아하고 따르던 이들에게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사형되셨다는 것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 또한 바로 그분이 부정하고 불의한 세상을 바꾸어줄 거라고 기대했던 이들과 이런 세상 속에서도 선하고 의롭게 살고자 하는 이들은 절망했을 거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을 거다.

제자들과 추종자들에게는 절망이었겠지만 예수님은 이미 그런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셨다. 이를 막아섰던 베드로는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라고 하시는 심한 꾸지람을 들었다(마르 8, 33). 권력자들은 그분을 세상에서 없애버린 줄 알았지만, 그분은 스스로 목숨을 내놓으시는 것이었다. 없어진 것은 그분이 아니라 우리의 죄다. 구세주 그리스도는 세상의 사악하고 불의한 이들과 맞서 싸워 쳐부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신 게 아니다. 그분은 당신 하느님 사랑의 불로 세상의 죄를 태워 없애시고, 세상 모든 이가 사랑이신 아버지 하느님을 제대로 알아 그분을 사랑하여, 그분께로 돌아와 그분과 하나가 되게 하시려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 사실 악마는 그분의 적수가 못 된다. 그것은 당장 꺼지라는 그분의 호통 한 마디에 도망쳐버렸다. 주님의 관심은 승리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과 사랑 그리고 구원이었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십자가의 길뿐이다. 구세주 예수님께서 먼저 모범을 보여주셨고 당신을 따라오려는 이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셨다. 누구나 예외 없이 다 그렇게 될 거라고 예고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수시로 머리와 몸통에 길게 십자가를 긋고, 목에 거는 것도 모자라 손가락에도 십자가를 끼고 다닌다. 그 길을 가는 데에 가장 큰 어려움은 십자가의 무게가 아니다. 실망이다. 체념과 낙담은 큰 유혹이고 냉소적인 마음과 태도는 절망하는 속도를 더 빠르게 한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수고는 좀 하겠지만 결국은 성공하게 될 거라는 바람이 우리를 실망하고 절망하게 만든다.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고 돌아가셨는지 알았다면 처음부터 그런 바람을 가지지 말았어야 했다. 성공이 아니라 사랑이다. 여기서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 하느님을 사랑했으면 그것이 인생 승리다.

선하고 의롭게 살기를 바라면서 불의하고 부정한 세상에서 성공하기를 기대하는 게 이상한 거다. 그런 세상에서 선한 지향과 의로운 행동 때문에 반대 받고 고통받는 게 정상이다. 그럴 때 실망하고 슬퍼할 게 아니라 반대로 사도들처럼 기뻐해야 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였다(사도 5, 41). 아무나 하느님의 이름으로 반대 비난 모욕을 당하는 게 아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부르시지만 뽑히는 사람은 적다.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시지만 여린 산들바람 같이 말씀하시는 그분의 여린 목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은 힘과 성공을 자랑하지만, 하느님의 어린양을 따르는 우리는 자신의 상처를 자랑한다. 주님을 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약함을 자랑한다. 그래야 주님의 힘이 나에게서 떠나지 않는다(2코린12, 9). 세상을 잘 보고, 인류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선하고 의로운 사람들이 약하고 폭력을 싫어해서 악하고 불의한 힘에 희생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이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죽어도 그들은 역사에 남고 잘못된 역사도 결국에는 바로잡힌다. 하지만 정작 십자가의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과 영원히 살기 위해서 십자가의 길을 간다.

예수님, 실망은 잠시만 하고 다시 사랑의 불을 지핍니다. 그 불이 저를 정화하고 저를 태워 없애지만 그 불 덕분에 이웃은 따뜻하고 주님을 보게 됩니다. 이보다 더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 이콘 앞에 서면 언제나 위로를 받고, 없던 힘과 용기가 생기고, 안 보이던 것을 보게 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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