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7월 4일 연민

이종훈

74일 연민

 

그리스도인들은 그 이름 그대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절대적 모범으로 삼아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지만 세상 속 어디에서인가 살지 세상을 등지고 살지 않는다. 예수님의 분부대로 하늘나라의 복음을 온 세상에 알려야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남자의 도움을 받지 않고 태어나신 것 말고는 철저히 세상 속에서 사셨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살면서 하느님이 주시는 것만 먹고 살았지만, 예수님은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드시면서 사셨지만 언제나 하느님께만 속해 있었다. 세상 속에서 살면서 하느님께만 속해 있으셨고, 하느님 말씀을 전하셨다.

 

그분에게 하느님의 말씀은 목숨까지 내놓을 정도로 절대적이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세상에게 당신의 이 아드님을 내어주신 것이다. 이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하느님의 말씀은 그렇게 절대적이다. 양보할 수 없고, 미룰 수 없고, 다른 것으로 대치될 수 없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그렇게 살려고 고향을 버리고 아무도 살지 못하는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살았고, 그것도 어려울 때는 결국 목숨을 내놓음으로써 철저히 예수님을 따랐다. 그렇게 예수님을 따랐고, 또 그렇게 복음을 전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들이 따랐던 같은 예수님을 따른다. 우리는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박해받지 않지만 무관심으로 복음을 무시하고, 눈부신 물질문명으로 우리를 현혹시키며, 세속화로 우리의 삶에 도전한다. 차라리 예전처럼 정면에서 단순하게 우리를 위협하며 박해한다면, 두렵기는 하지만 우리가 증언하는 것이 선명하게 드러나서 식별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단지 예수님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포기할 것인지 선택만 하면 되었을 것 같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저질러지는 죄악들이 너무 커서 하느님을 그 도시를 없애버리시기고 작정하셨고 당신의 천사들을 내려 보내셨다. 그들을 발견한 롯은 간절하게 청하여 그들을 자기 집으로 모셨고 그들에게 지극정성으로 대접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안 그 도시 사람들은 그들에게 해코지하려고 몰려들었다. 롯은 그들을 온 몸으로, 자신의 두 딸까지도 내어주겠다고 하면서 그들을 저지하면서 주님의 천사들을 보호하려고 하였다(창세 19,1-8). 그렇다, 하느님의 말씀은 그렇게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자식을 내어주면서까지 보호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롯의 집안에 주님의 천사들이 있는 것을 알고 그들을 해코지하려고 달려들었던 소돔과 고모라 도시 사람들처럼, 그리스도 예수님을 따르며 살려고 하는 우리들을 세상은 위협하고 흔들어 놓는다. 우리들은 안타깝게 그들의 위협과 도전에 흔들리고 혼란스럽다. 마치 한 밤 중 폭풍에 시달리는 작은 배에 타고 있는 예수님 제자들 같다. 그런 중에 예수님은 편하게 자고 계셨다(마태 8,23-26). 배 멀미를 안 하려면 흔들리는 배와 함께 하라는 말이 있다. 그렇게 하면 정말 배 멀미를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흔들리지만 곧게 서 있게 된다. 세상 속에 살지만 흔들리지 않고 비틀거리지 않고 똑바로 걸어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휘몰아치는 폭풍에 흔들리는 배 안에서도

편안히 주무셨던 예수님,

저희에게도 주님이 지니셨던

완전한 평화를 심어 주십시오.

 

주님은 어떻게 그런 평화를 간직하실 수 있으셨습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목숨 걸고 지키려는 굳은 결심?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완전한 신뢰?

저와 세상을 굽어 살피시는 하느님의 연민?

 

그 어떤 것도 제게 쉬운 것은 없군요.

그래도 연민만은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제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 할 수 있고,

매일 접하는 불쌍한 사람들에 대해서 그럴 수 있습니다.

그 길로 저를 인도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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