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경쟁에서 사랑으로 (다해 사순제1주일)

이종훈

헬조선, 금수저, 흙수저, 자녀를 살해한 부모, 개성공단 폐쇄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 요즈음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말들입니다. 권력자들과 정치인들은 우리 동네와 우리나라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고 매번 공약하지만, 그들의 공약(公約)을 헛된 약속인 공약(空約)이 되어 버리기 일쑤 입니다. 그들의 노력과 의도를 모두 의심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제도나 법이 아니라, 세상과 삶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하는 마음의 근본적인 변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제도나 법이 아니라 개개인의 근본적인 마음의 변화입니다. 내가 바꾸면 우리가 바뀌고 세상도 바뀝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순시기라는 특별한 시간 동안 참회와 보속으로 회개를 위한 노력을 더욱 기울입니다. 회개는 가던 길을 바꾸는 것입니다. 삶은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사람은 아는 대로가 아니라 믿는 대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개는 마음을 바꿈이라고 좋을 듯싶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표는 그 이름 그대로 그리스도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분을 두고 그리스도교라는 종교의 창시자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그분을 새로운 삶, 새로운 인류, 완전한 인간을 보여주신 분,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라고 믿고 따릅니다. 그분이 이런 것들을 하늘 높은 곳에서 말씀해주셨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그분을 좋아하고 따르려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분은 우리 중 한 사람으로서 우리가 겪는 기쁨과 슬픔, 유혹과 고통을 온전히 겪으시면서 완전한 삶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의 가르침은 힘 있고, 다른 학자들과는 달리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루카 4,32).

 

그분은 당신의 삶에서 완전한 삶, 완전한 행복, 구원을 찾고, 당신을 사랑하고 따르려는 이들에게 철저한 계명 준수와 금욕적인 삶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반면에 당신 자신에게는 그러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까지 당신의 사명을 철저하게 남김없이 완수하셨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하실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지닌 초인적인 의지와 굳은 신념 때문이라기보다는, 당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완전한 신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죽음의 위협조차도 그 사랑에 대한 신념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모든 가르침과 그분이 행하신 모든 기적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의 표현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당신을 무한히 사랑하시니,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당신에게는 위협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사명은 완전한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자신을 이웃에게 완전히 내어줌입니다. 그래서 완전한 사랑은 자신을 돌보지 않습니다. 완전한 사랑 안에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완전한 신뢰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자신을 돌보시고 책임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그런 분이 돌을 빵으로 만들지 못할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능력은 당신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웃, 특히 가장 작은 이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하느님께 대한 완전한 신뢰와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당신을 지켜주시고 당신의 생명과 삶을 책임지실 것이라는 약속을 굳이 시험해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저 십자가의 죽음은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사랑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돌아갈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수도자들이 청빈, 정결, 순명의 서원을 하는 것도 바로 예수님의 이런 마음을 지니기 위함입니다. 경쟁이라는 삶의 구조를 버려야 하겠습니다. 나에게로만 향했던 시선을 너에게로 돌려야 하겠습니다. 삶의 원리는 경쟁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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