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9월 9일 사랑과 고통

이종훈

9월 9일 사랑과 고통

 

육체는 고통의 도구이다. 질병, 유혹, 욕정, 노동으로 고통을 만든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한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어쩌면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일지도 모르겠다.

 

하느님은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고통 받을 수 없고, 죽을 수 없는 분이 사람이 되셔서 육체를 입으시고 고통과 죽음을 받으셨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것이 사랑 때문이라서 그분이 받는 고통은 그 자체로 인간을 향한 사랑이다. 그분은 일하며 땀 흘리셨고, 병고와 연민으로 눈물도 흘리셨고, 죽음과 공포와 고통까지 당하셨다. 이 모두가 다 사랑이었다. 

 

그분의 사랑은 연민이다. 당신만 믿고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라다니며 수고하던 제자들을 어떻게 더 사랑하시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들이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밀 이삭을 비벼 까먹었을까? 그들의 고생과 배고픔을 함께 겪은 예수님은 그날이 안식일이라 해도, 그것이 추수행위로 보일 수 있다고 해도 그들을 단죄하실 수 없었다. 당신도 배가 고프셨을 것이다. 그들에게 미안하고 그런 그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우셨을까? 

 

그들의 그런 사정을 모르는 바리사이들은 그들의 행위를 쉽게 고발했다. 바리사이들은 엄격하기만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하셨다. 당신의 육체로 그들을 사랑하셨다. 그들을 변호하셨던 것이다. 그들은 율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밥을 먹은 것이라고 설명하셨다. 그것은 예수님이 그들을 아셨기 때문에 가능한 변호였다. 예수님은 고통의 도구인 육체를 사랑의 도구로 바꾸셨다. 당신의 죽음마저 사랑으로 바꾸셔서 모든 사람이 영원히 사는 길을 만드셨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제일 먼저 그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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