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참되고 아름답게(부활 2주일)

이종훈

참되고 아름답게(부활 2주일)

지난 성 금요일이었습니다. 판공 고해성사, 피정, 사순 특강 그리고 성삼일 전례 준비 때문에 피곤한 데다가, 성 금요일 아침 단식까지 하니 마음까지 힘이 빠진 것 같았습니다. 식당에서 주방 자매님이 뭐 해먹으면 좋겠냐고 물으시기에, 성 금요일이니까 간단하게 먹는 것이 좋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도 자매님은 제가 맛있는 메뉴를 말해주기를 기대하시는 듯 비슷한 질문을 계속하셨습니다. 살짝 언성을 높이며 예수님 돌아가신 날이니까 대충 먹자고 하니, 혼잣말로 하듯이 작은 목소리로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잖아요. 신부님들 다들 지쳐 보이고 오늘내일 바쁘실 텐데 잘 드셔야 하잖아요.’ 하셨습니다. 그 대답이 어이가 없어 함께 웃었습니다. 방으로 돌아와서도 자매님의 그 대답이 계속 머리와 마음속에서 맴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살아 있으니 살아야 합니다. 살아내야 합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할 때마다 마음 아프고 우울해지지만, 그것이 주님의 뜻은 아닙니다. 주님은 무덤에 계시지 않고 부활하셨고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부활하여 살아계신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과 화해하고, 그분께로 마음을 돌리기를 바라십니다.

 

주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이 참된 것을 찾고 그대로 살기를 바라십니다. 세상이 엉망진창 뒤죽박죽이 되어서 참되고 아름다운 것들은 도서관의 고서보관소나 영화 속에서나 찾을 수 있다고 해도, 우리는 참되고 아름답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러셨듯이, 참되고 아름답게 살려는 이들의 삶은 고단할 겁니다. 마음고생도 많이 하고, 실질적으로도 손해도 많이 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의 마음은 평화로울 겁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나누는 마지막 만찬에서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 사건 후에 당신의 제자들이 겪게 될 일과 마음의 갈등과 혼란을 예고해주셨습니다. 수난과 죽음은 당신 사명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이미 예고된 일이었지만, 제자들에게는 정반대였습니다. 그래도 평화를 잃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라나선 이후부터 그들에게는 어려움과 고통은 없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주님의 수치스러운 수난과 죽음은 너무나 혼란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주님께는 그런 일들이 당신 삶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러운 것이었겠지만, 제자들에게는 한 번도 예상하지 못한, 아니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던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너무 당황하고 혼란스러웠던 나머지 모두 도망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믿고 따랐고, 그분이야말로 생명의 열쇠 즉 인생의 의미를 알고 계신 분이라고 믿었던 스승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참되고 아름다운 것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혼란스럽고 두려워 문을 닫아걸고 숨어 있는 이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은 그 잠긴 문을 지나 그들 가운데에 서셨습니다. 극도의 혼란과 절망으로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해 닫아걸었던 문을 지나 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인사하셨습니다. 주님이 그들에게 전하시는 평화는 바로 며칠 전에 저녁을 드시며 제자들에게 전해주었던 그 평화였습니다. 그분은 수난과 죽음 전에도 평화로우셨고, 그 모든 일을 겪어내신 후에도 역시 평화로우셨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분은 하느님의 아들이셨으니까 그럴 수 있었을 거라고 여기고 싶겠지만, 사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놓이거나 힘겨운 일이 맡겨졌을 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하며 위로하고 격려하곤 합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힘겹거나 원치 않은 일들을 해내 가면서 몸은 지치겠지만, 마음은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어차피 겪어내야 할 일이고, 그렇게 되기로 되어 있었고, 올 것이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런 것들도 결국은 다 지나갈 것임을 알고 있기에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참되고 아름다운 일을 찾고 그런 일은 하는 사람에게는 거의 언제나 도전, 박해, 무시, 비난 등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걸 알고 계셨기에 평화롭게 그 길을 가셨지만, 제자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혼란의 어둠 한가운데는 스승을 지키지 못한 자책과 자기 자신에 대한 절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죄인이었고, 비겁했으며, 철저히 세속적이었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그것을 세상에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명백하게 드러나게 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처음 하신 말씀과 선물은 평화였습니다. 수난과 죽음 전에 그들에게 주셨던 그 평화를 부활이라는 결코 취소될 수 없는 인장을 찍어 다시 선물하셨습니다. 그 평화는 그들의 죄가 이미 용서받았음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수난과 죽음은 바로 그것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혼란과 절망의 어둠을 영원히 쫓아내 버린 완전한 빛이었습니다. 의롭고 선한 이들에게는 언제나 박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세상은 돈, 권력, 성공, 출세를 위해서 인간의 품위와 소중한 가치들을 외면하고 무시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안 된다고 배워 아는데도 그런 세상의 흐름과 요구에 몸과 마음을 내어 맡기게 놓아둡니다. 마치 제자들이 스승의 죽음을 보면서도 막지 못했던 것처럼. 참되고 아름다운 것들을 찾고 그렇게 살려는 사람들의 삶은 고단할 것이고 손해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은 빛보다는 어둠을 좋아하기 때문에 빛의 자녀들을 갖가지 방식으로 괴롭힐 것입니다. 그들의 추하고 더러운 본 모습이 드러날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요한 3,19-20).’ 그러나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고통, 불이익, 손해가 두려워서 참되고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잘 알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우리의 비겁함과, 귀찮아질까봐 의인과 정의의 목소리에 귀를 닫았음을 고백한다면 그 즉시 우리는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그 평화는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께 받았고, 주님이 수난 전에 주셨던 것과 같은 평화입니다.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잘 살아야 합니다. 참되고 아름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 평화를 잃어버리지 말고, 어쩌다 잃었어도 그런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그 평화를 다시 구한다면 우리는 참되고 아름답게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 날에는 그 평화 속에서 하느님의 품으로 건너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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