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사랑과 따름(부활 3주일)

이종훈

사랑과 따름(부활 3주일)

좋은 일을 많이 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것은 위대하고 기념비적인 사업도, 보람이라는 감동을 받기 위한 일들도 아니며,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과 감사의 인사를 받기 위한 것은 더욱 아닙니다. 그것은 사제요 수도자로서 작든 크든, 내부적인 것이든 대외적인 것이든 맡겨진 모든 소임을 모든 재능과 열정으로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만나는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작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되거나, 그럴 수 없다면 그들과 함께 고통받을 수 있는 몸과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광이나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의 기쁨을 위한 삶입니다. 그 길이 곧 구원의 길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꿈을 이룸이 성공이고 완성이라고 여겨왔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봉헌의 삶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는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하늘에 마련되어 있는 자신의 몫만을 희망하는 것이 봉헌생활자, 수도자요 선교사의 마음입니다.

 

그런 생각과 다짐을 하면 가슴이 뜨거워져서 당장 그런 계획들을 행동으로 옮기고 매일 벅찬 희망으로 거룩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노력과 희생이 무의미해 보여서 쉽게 지쳐버리고 점점 게을러집니다. 도전 반대 비난 실패가 두려워 진실을 말하기 주저하거나 곤란한 시간을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며 자꾸 피하거나 미룹니다. 한 마디로, 마음먹은 만큼 그런 결심들이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서 물고기를 잡으며 살던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어느 날 예수님을 만나 인생의 길을 바꾸었습니다. 밤새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그분의 말씀대로 했더니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물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루카 5,1-11). 그분은 매우 특별한 분이니 그분을 따라가면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십자가 사건이라는 엄청난 일을 겪고 절망했습니다. 그런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서 그분의 부르심과 소명에 대해서 깨닫기 시작했었을 겁니다.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이 약속하셨던 대로 “사람 낚는 어부(마르 1,17)”가 돼서 사람을 낚으러 세상으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역시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요한 21,3). 자신의 생계와 성공 때문이 아니라, 이제는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니 분명히 많은 고기를 잡게 될 거라는 생각이 잘못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그 전처럼 예수님,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했더니 그물을 끌어올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6절). 호숫가에서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베드로는 고기가 엄청나게 많이 잡힌 것을 보고 두려워서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8).”라고 고백했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선 인간의 당연한 고백입니다. 하느님 앞에 어느 누가 의롭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욥 9,2; 25,4)? 그런데 이제 그는 고기를 배에 끌어 올리는 일도 제쳐 두고 거기 모인 제자들보다 제일 먼저 주님께로 달려갔습니다. 여전히 죄 많은 사람이라 겉옷으로 알몸을 가렸고, 할 수만 있다면 예전에 스승님이 물위를 걸어오셨던 것처럼 자신도 그렇게 한 숨에 달려가고 싶었을 것입니다(마태 14,28). 베드로는 다른 어떤 제자보다도 스승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랬던 만큼 한 순간 스승님을 모른다고 배반했던 그 시간들이 아프고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전에는 엄청나게 많이 잡힌 물고기들이 자신의 죄스러움을 드러나게 했다면, 이제는 그분을 알아보고 그분을 만나 뵙는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만남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요한복음을 쓴 사람은 자신을 주님께 사랑받는 제자라고 소개하지만(요한 21,24),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했던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어린양들을 사랑받는 제자가 아니라 다른 제자들보다 당신을 사랑하는 베드로에게 맡기셨습니다(요한 15.16.17절). 하지만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가 죄로 기울어지는 경향과 고질적인 악습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 특별한 사랑을 받아도, 그분을 제일 사랑해도 여전히 우리는 죄인입니다. 죄인이지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그리스도 하느님이라고 믿고 고백하는 이들은 죄를 용서받습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며 그분에게 돌아서는 이는 언제나 죄를 용서받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은 죄의 용서가 아니라 그런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죄를 용서받아 온전하게 회복된 마음과 영혼은 선행에 대한 열망을 가지게 되고, 그 열망을 실천으로 옮길 때 필연적으로 주어질 십자가를 짊어질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선행들이 많은 열매를 맺기를 바라기보다는, 그것들이 잘 되어가지 않거나 실패해도 자신이 예수님의 뒤를 따랐음에 기뻐하고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당신을 그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은 성취와 성공이 아니라 “나를 따라라(요한 21,19).”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음에 기뻐할 수(사도 5,41)”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름은 그분의 삶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지니셨던 마음으로 그분처럼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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