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하늘마음 (주님승천대축일)

이종훈

하늘마음 (주님승천대축일)

 

어렸을 때 장래의 희망에는 외교관이라고 적곤 했습니다. 그런데 커 가면서 그것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꿈이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그 뒤론 꿈도 희망도 생각할 겨를 없이 공부, 시험 속에 파 묻혀 살면서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달려가는 그곳에 먼저 다다르려고 힘껏 달렸습니다. 그러다가 결승점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꽈당 넘어 지고 말았고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그제야 하느님을 진심으로 찾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의무감에 주일미사, 사람들이 좋아서 모임에 나갔습니다. 앞이 캄캄해진 그 때 처음으로 하느님께 청했습니다. 그 신앙은 기복적이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어렸을 때 저의 꿈이 사제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후 약간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오래지 않아 앞이 다시 환해졌습니다. 가야 할 곳이 잘 보였고,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해졌습니다. 바뀐 목적지를 향해 또 다시 그 전처럼 열심히 달렸습니다. 수도회에 입회해서 한 단계씩 올라갈 때마다 신분도 바뀌었고, 목적지에 가까워짐을 확인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러면서 마침내 사제가 되었고 저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렇게 꿈을 이룬 성공(?)한 사람으로서 세상으로 다시 나갔습니다. 수도회 사제로서 신나게 열정적으로 몸까지 상해가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지나지 않아 다시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제의 삶을 선택했음을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세상과 마주하며 그 안으로 들어갈수록 사제의 일이 보잘 것 없고, 게다가 작은 수도회의 소속으로서는 일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더 나빠져 가는 것 같았고 거대한 악의 현실 앞에서 사제는 참으로 작은 존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가슴 아픈 현실을 접할 때마다 마음 아프고 때로는 분노했지만, 정작 화가 나는 부분은 그런 현실 앞에서 사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참으로 미약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언제나 칭찬과 감사의 인사를 듣던 교회의 울타리 밖으로 나오니 자신이 속해있던 교회라는 세상이 얼마나 작은지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그들만의 세상 안에서 그들만의 언어로 말하는 커다란 동아리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때부터 신앙은 무엇인가? 사제란? 그리스도인이란?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가 삶의 근본적인 질문이 되었습니다. 무의식 속에, 아니 어쩌면 은근하고 은밀하게 사제라는 신분의 우월적인 지위를 즐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그리고 사회적으로 사제를 그렇게 대우해줌이 그것을 더 부추겼습니다. 사제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제이고, 사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되고 완전한 사제이십니다. 교종을 비롯한 주교와 사제들은 예수님의 사제 직무에 참여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참 목자이신 예수님의 삶을 기억합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서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하셨는지 묵상하며 마음에 깊이 새깁니다. 그분은 약한 이들의 친구셨고, 가장 작은이들이 곧 당신 자신이라고 여기셨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곧 하늘나라였습니다. 그분은 세상을 뒤집어 바꾸지는 못하셨지만, 그들은 그분 안에서 바뀐 세상을, 새로운 세상을 보고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지상 선교 사명은 한 마디로 하늘나라를 전해줌이었습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그분의 설교와 가르침은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으로 보증되었고, 부활로 확증되었습니다. 그분은 부활 후에도 사십 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도 여전히 하늘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사도 1,3). 그리고 하늘나라로 올라가셔서 성부 오른 편에 앉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셨던 그분은 승천하셔서 비로소 하느님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도, 이 세상에 계실 때에도 그리고 하늘에 오르신 후에도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단지 이 세상에 지내실 때의 모습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세상에서 하느님으로서 사셨습니다. 그분의 삶 안에 그리고 그분 안에 하늘나라가 있습니다. 그분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이미 하늘나라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곳은 죽고 난 후에 가는 새 세상이 아닙니다. 세상에 살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되는 것, 어떤 신분을 갖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사느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에 올라 하느님이 되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느님으로서 사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마친 다음 비로소 하늘나라의 시민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처럼 살면 여기에서부터 하느님의 자녀, 예수님의 형제, 하늘나라의 시민입니다. 러시아의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은 우주선 안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며 하느님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미국의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은 하늘에서 푸른 별 지구를 바라보며 하느님의 존재를 체험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올라가신 하늘은 저 우주 끝이 아니라, 내게 가장 가깝고도 먼 나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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