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성령의 선물 용서 (성령강림대축일)

이종훈

성령의 선물 용서 (성령강림대축일)

 

돌아가신 부모님들이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그분들의 한결같은 지지와 사랑이 그리울 때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잘해드리지 못했고 못된 말과 행동으로 그런 때마다 그분들이 마음 아파하셨을 것임을 알게 된 때이기도 합니다. 그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던 기억, 좀 더 잘해드리지 못했던 후회 때문에 속상하고 안타깝지만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는 지금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에 더 괴롭습니다. 그래서 속죄하고 용서받는 느낌이라도 받아보고자 부모님들과 비슷한 연령 때의 어르신들에게 잘 해드리려고 합니다. 그런 마음과 행동들이 불효와 잘못을 없애주지는 않겠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평화스러워지는 걸 보면 용서받는 느낌을 받는 것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스승의 죽음을 막는 것은 고사하고, 그분의 곁도 지키지 못했으며 심지어 그분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부인했던 사실 때문에 죽도록 괴로워했을 겁니다. 처음에는 자신들에게도 화가 미칠까봐 두려워서 문을 꼭꼭 걸어 잠갔지만, 그런 시간이 지난 후부터는 그런 불충, 비겁함, 위선 등이 세상에 드러날까봐, 아니 그런 자신이 너무 미워서 자신을 어둠 속에 숨겨두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은 상처받은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며 당신이 유령이나 환상이 아님을 알려주셨습니다. 바로 그분, 자신들이 버리고 도망쳤던 바로 그분임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20,19-20). 그 때 제자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적절한 말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말로는 그 상태를 표현할 수 없습니다. 두려움? 충격? 기쁨? 의심? 고마움?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 합친 말이 평화일겁니다. 그분이 살아계셔서 정말 다행이고 감사했습니다. 이제 그분께 용서를 청할 수 있고, 그리고 정말로 그분을 위해서 목숨까지 내어 놓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살아 돌아와 주심은 그 자체로 속죄요 용서이며 그래서 고마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참으로 기뻐했습니다.

 

제자들은 그들의 스승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들 자신에 대해서도 몰랐습니다. 자신들이 그렇게 한심하고 죄스러운 사람들인 줄 몰랐습니다. 그것들이 밝혀지고 나니 너무 괴로워 죽고 싶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뿐만 아니라 그 흔적까지도 지우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승은 그런 그들에 대해서 다 알고 계셨습니다. 당신의 수난과 죽음의 시간이 오면 그들은 혼란스러워할 것이고, 도망칠 것이며, 당신을 모른다고 할 것임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그분과 함께 다니면서 자신들이 의인이라도 된 줄 알았겠지만, 그들은 분명 여전히 죄인이었고 주님은 그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는 인사말에는 이 모든 것과 더불어 그런 그들을 용서하셨음도 담겨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심판자로만 알고 있는 이들에게 이런 사실이 두렵겠지만, 그분을 사랑으로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기쁨이고 희망이며 언제나 평화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바로 이것을 위한 것이었고 이것이 당신을 파견하신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용서!

 

부활하신 주님은 이렇게 그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세상에 맞는 새로운 법을 주셨습니다. 그 법은 용서이고 그 결과는 평화입니다. 사도행전은 오순절에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오셨다고 전합니다(사도 2,1-3). 오순절은 밀 수확을 끝내고 하느님께 맏물을 바치는 추수 감사절이고, 이 축제 중에 ‘하느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율법을 모세에게 주신 사건’을 경축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신 자신을 인류를 위한 제물로 봉헌하시고, 그 봉헌으로 완성된 새로운 세상의 법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명령하시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23).” 주님은 정의를 세우라고, 자선을 베풀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용서의 직무를 맡겨주셨습니다. 그 날의 감격과 깨달음이 그들 마음 속 깊이 새겨졌을 진 그들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용서를 전했습니다. 교회는 그 일을 이어갑니다. 뉴스와 인터넷을 열어보기 겁날 정도로 혼란스러워진 세상 속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일터와 가정에서 희망, 사랑, 용서란 말들을 사치스럽게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 안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받은 것을 전합니다. 정의도, 자선도 아닌 용서를 전합니다. 자신이 용서받았음을 모르는 이들은 다른 이들을 용서할 수 없고, 그런 곳에는 정의도 자선도 없을 것입니다.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죽음은 헛된 것이고, 그분의 부활은 환상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들에게 하느님은 분명 영원히 두려운 심판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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