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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완전한 사랑 안에 머무름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이종훈

완전한 사랑 안에 머무름 (삼위일체대축일)

 

인간의 폭력성, 잔인성, 공격성이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새삼 질문하게 하는 한 주간이었습니다. 인간만이 먹잇감을 얻는 것 이외에 다른 이유로 같은 종과 다른 생물을 죽인다고 합니다.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들고, 생각하기조차 괴로운 참담한 현실을 보고 듣게 됩니다. 그러면 가슴이 답답함을 넘어 아프고, 때로는 너무 슬퍼서 분노가 일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여기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선하신 하느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에 악이 있는 이유에 대해 지금까지 누구도 시원하게 대답을 해주지 못했습니다. 악의 실체와 근원을 밝히겠다는 시도는 어쩌면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낱낱이 알아내겠다는 것과 비슷할 겁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알 수 없는 것처럼 악에 대해서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단지 악의 기운과 세력이 우리 가운데 있음을 분명히 느낄 뿐입니다. 그것이 너무 참혹하고 고통스러워서 이곳을 떠나고 싶지만, 사실 이 세상 어느 곳을 가도 그 세력이 닿지 않는 곳을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을 떠나야만 비로소 그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이곳을 떠나고 싶어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오히려 이곳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뜻을 거스르는 일들이 벌어지는 이 세상을 온 몸으로 끌어안으셨습니다. 그들과 맞서 싸우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당한 모든 이들을 치유해주셨습니다. 피해자를 치유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가해자들마저도 다시 돌아와 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알 수 없음은 감각적으로 그리고 지성적으로 그분을 알 수 없기 때문뿐만 아니라 당신 스스로 죄인들을 위해 희생하셨기 때문일 겁니다. 사랑하는 이와 공동선을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은 있어도 죄인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아버지 하느님의 모든 권한을 위임받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당신 맘대로 하신 것은 하나도 없고, 언제나 아버지가 원하시는 대로만 하셨습니다. 그분의 삶은 곧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이고 뜻이었습니다. 그것은 악과 맞서 싸워 없애버리는 것은 아니라, 그 피해자 가해자 모두 즉 그 희생자들을 당신 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분 안에 있는 이들에게 악은 자신의 힘을 뻗칠 수 없습니다. 그분 안에 있는 이들은 모두가 절대로 안전합니다. 그 안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의인도 공동선도 아닌 죄인을 위해서 당신의 외아들마저 아낌없이 내어놓는 하느님의 사랑, 우리는 알 수 없는 무한한 사랑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덕행과 금욕생활로 애써 찾아 얻는 곳이 아니라, 그분을 믿고 그분께 청하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로마 5,1-2).”

 

이런 주장은 끔찍한 악의 현실 앞에서 피안의 세계를 찾는 현실도피이거나, 고통만을 잊으려는 진통제나 마취제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을 남김없이 알아낼 수 없듯이, 악의 실체와 근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악에 대해 탐구하면 오히려 악의 손아귀에 들어갑니다. 마치 참담하고 참혹한 현실을 만든 가해자를 비난하고 분노하다보면 온 마음이 어두워지는 것 과 같습니다. 우리는 결코 악과 맞서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단지 그의 유혹이 있는 곳에 가지 않는 것 말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설령 그에게 걸려 넘어졌어도 그 즉시 하느님께로, 아들까지 제물로 내어놓으신 그분의 무한한 사랑을 찾아 기대는 것, 그분의 용서를 믿는 것으로 우리는 다시 회복됩니다. 그분은 사랑을, 무한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것은 곧 우리는 사랑을, 무한한 사랑을 찾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찾습니다. 늘 목말라 하고, 허기진 그곳을 채우고 싶어 합니다. 그곳을 남김없이 채워 더 이상 목마르지 않고 허기지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은 사랑,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그 안에서는 모든 죄인이 온전해지고, 또 안전합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1테살 5,17). 기도는 우리를 하느님과 이어주고, 하느님 안에 있게 합니다. 하느님은 삼위일체입니다. 삼위가 하나가 되는 원리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그 계시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 즉 완전한 사랑을 믿고 그 안에 머무름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하느님은 탐구가 아니라 믿음의 알게 됩니다. 삼위가 서로에게 자신을 완전히 내어 주고, 오직 그의 뜻만을 추구하는 완전한 공동체이고 그래서 하나이며 완전한 사랑이 우리의 하느님입니다. 완전한 사랑 안에서 우리는 온전하고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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