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좁은 문을 여는 작은 촛불(연중 21주일)

이종훈

좁은 문을 여는 작은 촛불(연중 21주일)

 

무더운 날씨와 잠 못 이루는 열대야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일의 능률도 안 오르고, 정신도 맑지 못한 날들입니다. 조그만 일에도 쉽게 짜증나고 화나기 쉬운 요즘, TV나 대중매체를 통해 접하는 소식들은 우리들을 더욱 답답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무더운 날씨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감동과 희망을 전해주는 좋은 소식을 듣는다면 힘겨운 무더위를 견디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복음은 말 그래도 기쁜 소식입니다.그렇다면 세상은 기쁜 소식을 바라고, 또 세상살이는 기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겠습니다. 복음은 사는 방법이나 성공비법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 하느님입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이 우리가 받은 선물이고 우리가 듣는 복음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가 구원받기를 바라십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혼인잔치에 초대를 받아 잔칫집에 들어갔지만 합당한 예복을 입지 않은 이가 쫓겨났던 것처럼, 모든 사람이 부르심을 받지만 모든 이가 선택받는 것은 아닙니다(마태 22,11-14). 많은 정보가 거의 동시에 공유되는 요즘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은 매우 적을 것 같습니다. 그 중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의 제자인가요? 수도자, 사제들은 모두 그분을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갈까요? 모두 그랬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분이 자신의 동네에서 가르치셨다고 해서, 그분과 밥을 함께 먹었다고 해서 우리가 그분과 친한 것은 아닙니다(루카 13,26). 그렇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주님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하고 말씀하실 겁니다(27절). 복음을 들었다고, 세례를 받았다고, 종신서원을 발했다고, 사제품을 받았다고 해서 그 자체로 무조건 그분의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을 사랑해서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일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그분의 친구입니다. 그 중에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도 분명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이 곧 혼인잔치에 합당한 예복이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세례가 아니라 실천이, 신분이 아니라 사랑이 구원의 열쇠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예수님이 복음이고 하느님이 선물입니다. 기쁨이 없는 이 세상에서 기쁜 소식이고 기쁨 그 자체이신 분과 함께 살아간다면, 그것은 행운이고 곧 구원이겠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자기 자신부터 바뀌지 않는 데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런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나의 인생에 하느님이 동반자 되어 주시고, 절망적으로 보이는 세상 안에 하느님께서 살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이런 세상과 자신에 대해서 우리가 실망하고 절망하게 되는 것은 삶의 어려움과 도전 때문이 아닙니다. 신앙인들에게 고통과 도전의 시간은 역설적이게도 하느님과 더 가까워지는 은총이 시간이 된다는 것을 지난 경험과 이웃의 나눔을 통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기운 빠지게 하고 우울하고 절망적이게 하는 것은 바뀌지 않는 세상이나 고통과 도전이 아니라, 하느님이 과연 계신가 하는 의심입니다. 한 마디로 하느님의 부재(不在)입니다. 영성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기도 합니다. 게으르지 않고 기도하고, 주님의 일꾼으로 충실하게 일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하느님의 현존은 희미해져가고, 마침내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여기게 됩니다. 답답하고 불안한데, 세상은 더욱 나빠지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은 나를 그리고 세상을 버리신 것 같습니다. 아니 하느님도 이 세상을 어쩌지 못하셔서 포기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고통과 도전의 시간이 은혜로운 시간이 되는 것처럼, 이런 절망에 절망의 시간은 하느님을 그분 그 자체로 자신 안으로 모시는 은총의 시간이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 안에 살아계시고, 그리스도의 영께서 세상 속에서 일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바뀌지 않고, 오히려 더 나빠지는 것 같아도,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하느님을 느낄 수 없어도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살아계심을 믿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계명을 지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1요한 5,3).”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4.17).” 작은 촛불이라도 어둠 속에서는 선명하게 빛납니다. 세상이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자기 자신마저도 어두워지는 것 같을 때, 바로 그 때가 우리의 작은 믿음이 빛을 발하고 힘을 주는 시간입니다. 그 작은 촛불은 우리를 좁은 문으로 인도해줄 것이고, 자신 혼자만 통과해갈 수 있는 그 문은 열릴 것입니다(루카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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