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깨끗한 양심과 성실은 그리스도인의 표지 (연중 25주일)

이종훈

깨끗한 양심과 성실은 그리스도인의 표지 (연중 25주일)

 

아주 신심 깊으시고, 예수님을 무척 사랑하시는 할머니 한 분을 압니다. 아흔을 훌쩍 넘기신 연세에도 홀로 지내시며 시간 날 때마다 성경을 필사하십니다. 성경 필사노트가 방 한 곳에 가득 쌓여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성당이 바로 앞인데도, 걷는 것이 불편하셔서 주일미사도 참례하지 못해서 매우 안타까워하십니다. 이 번 추석에 인사드리러 찾아 가 뵈었습니다. 지난 설에 찾아뵈었을 때보다 거동이 불편해보였습니다. 그런데도 이것저것 내 놓으시며 많이 먹으라고 재촉하셨습니다. 대화중에 요양보호사 등급을 받는 과정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기관에서 조사관이 나와서 할머니의 정신, 육체 건강 상태를 점검한 후에 등급 판정을 내린답니다. 기관에서 사람들이 방문하면 누추한 당신 집에 손님이 오셨으니 먹을 것을 내놓고, 묻는 말에 또박또박 대답하시고, 어려운 산수 문제도 척척 풀어내는데다가, 이리저리 움직여보라는 주문에 당신은 최선을 다하신답니다. 그러니 언제나 나쁜 등급을 받아 좋은 서비스를 받지 못하신답니다. 함께 갔던 분들이 그러시면 안 된다고 핀잔을 주면서 좋은 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아파서 거동도 못하는 척, 총기도 없는 척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당신도 알고 있는데 그렇게 못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생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거니와, 말씀은 안 하셨지만, 아마도 주님 뵐 날이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는데, 50년 넘게 과부였지만 이제껏 주님을 섬긴다고 나름 충실하게 살아오신 날들을 고깟 편리함 때문에 망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비굴한 행동은 하실 수 없었을 겁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깨끗한 양심과 성실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불편하게 삽니다. 그럴수록 더 가난해지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 배운 대로라면 그런 사람들이 존경받고 더 잘 살아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이용만 당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당 안에서만이 아니라 밖에서도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아니, 밖에서 더 그래야 하겠죠. 깨끗한 양심과 성실한 마음으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라(마태 5,16)”고 주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깨끗한 양심과 성실한 마음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심어주신 하늘의 빛이 우리 주위를 비춥니다. 그 빛은 우리의 일상 삶을 인도합니다. 우리의 일상이 우리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그분 마음에 들기를 바랍니다. 그분은 “하늘과 땅을 굽어보시며, 억눌린 이를 먼지에서 일으켜 세우시고 불쌍한 이를 거름에서 들어 올리십니다. 그를 귀족들과, 당신 백성의 귀족들과 한자리에 앉히십니다(시편 113, 6-8).” 우리의 양심과 마음 안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고, 그 안에서 싹이 트고 자라납니다. 그 나무는 우리 지상 삶이 끝나는 날까지 자라납니다.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고 기록하여라.’ 하고 하늘에서 울려오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묵시 14,13).’” 양심과 마음 안에서 자란 복음의 나무 한 구루가 하느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날이 어떤 이에게는 기쁘고 가슴 벅찬 날이겠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슬프고 두려운 날이 될 겁니다.

 

하늘나라 시민들과 세속의 법칙을 따르는 이들의 삶의 방식은 다릅니다. 우리도 세속에서 태어났지만, 하늘나라의 시민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그런 바람을 지니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하늘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완전한 희생은 그리스도인들의 충실한 삶의 보증입니다. 그것은 세속에서 하늘나라 시민으로 살아가려는 그리스도인들이 치러야 할 대가이며 동시에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는 일에 대한 확신입니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의 상처가 그리스도인의 표시입니다. 세례문서나 신심단체의 소속감이 그것은 아닙니다. 그 할머니가 양심적으로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자신의 상태를 보여주어 혜택을 받지 못한 것을 두고 세상은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할머니는 그런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 자신을 두고 주님께서는 기뻐하시고 마음이 흡족해하시라는 것을 그분의 양심과 마음은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분이 누리시는 양심의 자유와 내적인 기쁨은 세상 어떤 것으로도 얻을 수 없는 보물입니다.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루카 16,10).”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양심은 하느님의 말씀이 있는 지성소이고 우리의 삶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그 안에서 자신이 무엇을 선택하고 행동으로 옮길지 판단하는 자리입니다. 잘못 된 것을 선택하고 행동했을 때 아픈 곳이고, 바른 것을 행했을 때 평화와 기쁨을 누리는 곳입니다. 깨끗한 양심과 성실한 마음을 지닌 사람은 작은 일이건, 큰일이건 성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에게는 그 일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과 행동이 하느님께 기쁨이 되느냐가 그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빛은 언제나 맑고 환하게 빛납니다. 그런 사람이 세상 재물을 어떻게 다룰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세상 재물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관리하는 목적과 이용 원리에 충실함이 그의 관심사입니다. 세상 사람이 보기에 그가 재물을 사랑하는 것 같겠지만, 그의 마음 안에는 주님의 기쁨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는 “하느님과 재물을 섬길 수 없다(루카 6,13).”는 것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12,15).”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듯이 말씀하신 것은(루카 16,2-9) 급박하게 닥친 삶의 위기에 그가 자신의 삶을 위해 그답게 아주 영리하게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빛의 자녀들인 우리들도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거처에 들어가기 위해 오늘을 지혜롭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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