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12월 25일(성탄대축일) 무죄한 상태가 아니라 선행

이종훈

12월 25(성탄대축일무죄한 상태가 아니라 선행

 

어린 시절 설날은 세뱃돈 받는 날추석은 새 옷 하나 받는 날성탄절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는 날이었습니다청년시절에는 성탄밤미사 성가 연습하느라고 바쁘게 지내고 미사 후에는 밤을 새워가며 먹고 마시며 놀았습니다그렇게 밤새 먹고 마시며 놀아 녹초가 된 몸으로 맞은 어느 성탄절 아침에 이게 뭐하는 건가 하는 생각과 함께 지난밤이 참 부끄럽고 후회스러웠습니다성탄절의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도원에 입회하고 나니 그날부터 성탄과 부활의 기쁨은 사라져버린 것 같았습니다전례판공특강봉사자들 선물과 또 파티 준비 등으로 분주하고 게다가 지쳐서 솔직히 성탄절과 부활절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성탄은 그저 먹고 마시며 놀거나 의무감에 선물을 주는 날이 아니고 피곤한 몸과 마음에 빨리 해치워버리고 싶은 행사가 더욱 아닐 텐데 말입니다.


이 번 대림시기도 여느 해와 다르지 않게 지내고 있었습니다그러던 중 영성체 직전 성체를 들어올리며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라고 외칠 때 예수님은 죄를 없애버리시는 분이라는 교리가 새삼 깊게 와 닿았습니다어느 영성가는 우리의 죄는 하느님 사랑의 심연(深淵속에 빠져버려 아무도 꺼낼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그 말이 저에게는 이렇게 해석됐습니다예수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죄를 범할 수 없다고예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우리를 고발하고 심판하심이 아니라 허다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가 그분 안에 살아서 죄에 빠져들지 않게 해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아기가 되기까지 낮아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알고 믿으면서 그분을 떠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비록 인형이지만 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그 지극한 사랑을 기억하고 믿음을 다시 고백합니다아기를 바라보면 악한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순간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어떤 마음도 품지 않아 잠시지만 오직 평화만 있게 됩니다마치 술에 취해 육체적 고통에 둔해지고 모든 걱정과 미움이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하느님은 그렇게 우리의 모든 죄미움불화모진 마음을 당신 사랑으로 삼켜버리십니다참회와 고해성사 때 받은 보속으로 그 모든 죄가 없앤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그렇게 합니다성탄절은 바로 이것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날입니다.


구유에 계신 아기예수님을 경배하러 온 첫 손님은 왕도사제도귀족도 아니었습니다들에서 살며 양떼를 지키는 목동들(루카 2,8)이었습니다대부분의 시간을 들판에서 지내던 그들의 삶이 어땠을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게다가 그들은 자주 도둑취급도 받았다고 합니다한 마디로 별로 좋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천사들은 그들에게 처음으로 이 소식을 알렸습니다귀족이나 의인이 아니라 낮은 사람죄인이 첫 손님이었습니다우리는 이 이야기가 큰 위로가 되고 기쁜 소식으로 들리는 사람들입니다우리는 참회와 보속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어 무죄한 상태가 됩니다.

 

그런데 무죄한 상태를 유지함이 주님의 계명이 아닙니다무죄한 상태는 우리 노력의 대가가 아니라 하느님이 주신 선물입니다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그러니 거저 받는 선물에 조바심 낼 필요가 없습니다그 대신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하겠습니다예수님은 우리가 쓸데없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현세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게 해주십니다(티토 2,12). 그리고 선행에 열성을 기울이는 우리를 당신의 친구요형제자매라고 부르십니다(티토 2,14). 주님의 성탄의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내려 낙담하거나 지치지 않고 꾸준히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이 거칠고 차가운 세상에서 하늘의 별처럼 빛나게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주님의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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