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2월 26일 비천의 도가니

이종훈

2월 26일 비천의 도가니

 

어렸을 때 사제관에 가면 우리 집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집에서는 된장찌개 냄새가 나는데 거기서는 커피와 파이프담배 향기가 났다. 엄마는 고구마와 감자를 삶아주셨지만 신부님은 꼬부랑글씨가 적혀 있는 달콤한 과자상자를 열어주셨다. 신부님과 수녀님들은 모두 그런 나라에서 사는 줄 알았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나? 그건 아닌 것 같다. 어제도 전날 남은 국을 끓여먹어 치우고 간식으로 고구마를 깎아 먹었다. 이렇게 해먹고 살 수 있음에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나를 부르신 주님은 고달프게 사셨다. 죽음도 그랬다. 참으로 낮추셔서 사람들을 섬기셨다. 당신을 따른 성인들과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으면서도 주님을 따르면 나도 주님처럼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다니 참으로 어리석다. 구수한 커피와 파이프 담배 그리고 달콤한 과자를 바라지 않음이 아니라 낮아지고 섬김이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교회는 물론이고 사회에서도 좋은 대우를 받고 하느님 안에 있으니 재난과 불행이 피해갈 것이라는 어리석은 기대, 그리고 내가 남보다 낫다는 은근한 우월감을 버려야 한다. 참으로 부끄러운 생각이다. 제자들은 스승님이 못 들으실 때는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작 주님이 물으시자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마르 9,33-34). 그렇다, 그런 것은 주님 앞에서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금은 불로 단련되고 주님께 맞갖은 이들은 비천의 도가니에서 단련된다(집회 2.5).”

 

주님, 세상이 제게 심어준 헛된 기대를 버립니다. 버려도 어느새 또 제 마음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어 지겹다 못해 그놈들이 두렵기까지 하지만 그 또한 저의 비참이라고 여기며 더 낮아지겠다는 결심을 새롭게 합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그 놈들을 완전히 몰아낼 수는 없어도 그들의 주문을 무시하게 저를 주님께로 이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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