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5월 9일 살아있는 빵

이종훈

5월 9일 살아있는 빵

 

울산대교에서 투신자살을 기도했던 모녀가 구출됐다. 참으로 다행이다. 40대 엄마와 10대 딸이 얼마나 사는 게 어려웠으면 그 무서운 곳에 5시간 동안이라 그렇게 서 있었을까? 죽을 각오로 살면 된다고 말하지만 그들에게는 사는 게 너무 어려워 죽는 게 차라리 더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어른치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있을까? 그런 극단적인 선택까지는 아니어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지극히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예를 들어 세상 모든 이들의 삶과 자신의 것을 객관적으로 비교평가 한다면 자살은 분명 오류이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살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기계나 인공지능과는 다르다. 그들에게 현재로서는 살 길이 없고 그걸 찾을 수 있는 희망도 없어 보였던 거다.

 

그런데 위기협상팀의 한 요원이 그들의 차 안에 있던 수첩에서 그들의 이름을 발견하고 십대 딸의 이름을 부르면서 협상의 물꼬가 트였다고 한다. 그들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고 발길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극한 어둠에서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렀음이 그들에게는 희망의 작은 빛줄기였을 거다. 그 목소리는 ‘너의 어려움을 해결해줄 수는 없지만 그런 너를 이해한다.’로 들렸을 것이다.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누군가 살 희망을 전해주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어둠에서 빛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그리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넘어 왔다.

 

교회는 계명과 의무 그리고 많은 법규들을 내어 놓는다. 그런데 예수님은 정반대였다. 수백 가지 법규들을 단 두 가지 혹은 한 가지로 줄이셨다. 물론 한두 가지 법만으로 함께 살아가기가 충분하지 않음을 잘 안다. 하지만 하느님과 함께 사는 데는 그거면 충분하고 그것이 영원한 생명이다. 하느님은 사랑이고 생명이시다. 때로는 세상살이에 희망에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하느님과 함께 사는 데는 절대 그럴 일이 없다. 예수님은 당신을 “살아있는 빵(요한 6,51)”으로 소개하셨다. 음식이 되려면 식재료들이 죽어야 하는데 그 빵은 살아있다고 하셨다.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고 묻히셨지만 부활하시고 오늘도 나와 함께 세상살이를 하신다. 나는 이것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 대신 믿는다. 그리고 바로 그 믿음의 어둠 속에서 꺼질 수 없는 희망의 불빛을 본다. 실패하고 아프고 버림받고 죽어도 그것을 믿는 이들은 주님과 영원히 산다.

 

예수님, 성체를 경건하게 받아 영하는 모습이 믿지 않는 이들의 눈에는 우수꽝스럽겠지만 믿는 저희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시작인 지극히 거룩한 시간입니다. 그들은 모르지만 저희는 그 작은 밀떡이 어떻게 지금 나에게까지 전해왔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땅 밑 무덤을 거쳐 지금 땅 위의 나에게 온 살아있는 빵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살 길을 잃은 모든 이들을 어머니의 손길로 살 수 있게 이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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