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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훨씬 가까운 곳 (대림 1주일)

이종훈

훨씬 가까운 곳 (대림 1주일)

 

6년마다 열리는 세계총회에 참석하느라 11월 한 달은 외국에서 지냈습니다. 몸은 타국에 있었지만 인터넷 덕분에 마치 한국에 있는 것처럼 나라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답답한 나라 현실에 매일 놀라고, 분노하고, 절망하고, 허탈한 마음으로 한숨을 쉬곤 했습니다. 다른 외국 형제들도 같은 소식을 접하고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마다 설명해주기도 힘들었고, 설명해줄수록 비참해지고 수치심마저 생겼습니다. 그런데 촛불집회의 기적 같은 현실을 이야기할 때는 다른 나라 형제들도 자기 나라와 비교하며 우리 국민들이 대단하고 멋지다고 부러워했습니다. 절망감과 수치심으로 받은 마음의 상처가 치유 받는 것 같았습니다. 분노와 수치심이 무엇인가로 변화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도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대림절을 맞았습니다. 대림절 동안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고 준비합니다. 하느님은 약속하신 대로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안으로 보내주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 우리가 사는 땅으로 내려오셔서 우리 공동체의 한 일원이 되셨습니다. 저 높은 하늘, 우리는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에 계시던 분이 마음만 먹으면,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서 사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사십니다. 고상하고 고결하고 고요한 성당만이 아니라, 갈등과 혼란, 마찰과 다툼, 반목과 상처 가득한 시끄럽고 어수선한 우리 동네, 우리나라 안에서도 사십니다.

 

화가 너무 나서 다 뒤집어버리거나 떠나고 싶고,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심판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최상의 해결책이 되지 못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고, 복수는 또 다른 적대감과 불신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촛불집회에서 보여 준 비폭력과 평화적인 시위 그리고 분노와 요구를 표시하는 기발한 그 방식들은 그들을 더욱 부끄럽게 만들고, 국민들을 두려워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우리는 알 수 없는 위로와 자부심과 같은 매우 긍정적인 내적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 편에 서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평화와 안정감 그리고 자존감이나 자신감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이사 2,3).”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하느님께 배웠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사시면서 가르치시고 몸소 보여주신 삶의 방식과 지혜입니다. 그분은 우리 삶의 모범이시고 지혜 그 자체이십니다. 그분이 보여주신 비폭력과 평화의 정신은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큰 사랑에서 나왔습니다. 몇몇 사람들의 인격적 문제와 비뚤어진 마음이 온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많은 사람들을 실제적이고 경제적인 고통을 받게 했습니다. 진실이 밝혀지고 법의 올바른 심판을 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의 바람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분노, 절망, 수치심의 이 아픈 시간을 잘 견디어내면서 우리 자신을 철저히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어쩌면 직접적이지는 않았지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에 간접적으로 동의했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평가 없이 과거의 행보를 이어가고, 현실적인 편리함과 개인주의적인 사고로 공동체와의 약속과 그 원칙들을 외면하고, 약자를 배려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작은 희생들에 인색하고, 오직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가치만을 추구하며 인간의 고귀한 품위와 하느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에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 성찰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교회는 안전과 안락함을 위해 울타리를 더 높이 쌓아 세상의 울부짖음을 듣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할 겁니다.

 

하느님은 닿을 수 없는 저 높은 하늘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땅위에 우리 가운데에 사시며 우리가 당신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당신께 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처음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그러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목소리를 듣지 않았고 다른 곳에 마음을 두었을는지 모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아주 가까운 곳에 계셨습니다. 아무도 그분이 하느님이신 모를 정도로 우리와 똑같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사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그렇습니다. 아니 그 때보다 더 가까운 곳에 계신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된다고 선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고 사랑하는 그분이 믿지 않는 모든 이들을 포함한 우리 한 가운데에 계신다고 전합니다. 그들의 귀에다 외침이 아니라,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우리의 행동으로 전합니다. 그런 우리는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닥쳐 올 심판의 날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이 세상살이와 무관한 하늘 위에 떠 있는 세상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땅 위에 두 발을 굳건히 디디고 이미 우리 마음 안에 들어와 계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분이 원하시고 그분이 기뻐하실 일을 찾고 실천함이 우리가 살아야 할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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