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5월 26일(부활 6주일) 하느님 안에서 사는 사람

이종훈

5월 26일(부활 6주일) 하느님 안에서 사는 사람

 

초대교회는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할례와 모세의 율법 준수 때문에 큰 갈등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했던 바리사이파에 속했던 사람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할례를 베풀고 또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사도 15,5). 오늘날 이런 주장은 얼토당토않게 들립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풍습이지 우리가 들은 복음과는 관계가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의무들을 다 지켜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믿어 그 허다한 죄들을 모두 용서받고 하느님의 집으로 들어감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지키려고 하는 것들 중에 그 문제의 할례 같은 것은 없을까요? 그런 것들로 이웃을 비난하고 단죄하고 있지는 않은 지 잘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교회는 과거에 그런 일들을 적지 않게 저질렀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복음의 본질을 잊어버릴 때 우리는 외형적인 계명 준수와 엄격함을 구원의 도구라고 믿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면 자비와 사랑의 자리를 배타성과 단죄가 차지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수백 가지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어 구원의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단 두 가지, 아니 한 가지 계명만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제자들을 사랑하셨던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주님이 율법들을 폐지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셨습니다. 율법의 근본도 그 완성과 완전한 율법준수도 사랑, 완전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우들에게는 주일미사참례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살다보면 의도하지 않았어도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양심이 잘 압니다. 직장 때문에 혹은 아프거나 무척 피곤한데도 주일미사에 참여하면 과연 하느님이 기뻐하실까요? 그렇다면 하느님은 무서운 폭군이고 십자가의 주님은 심판과 징벌의 예고로 보일 겁니다. 주일미사에 참례할 수 없으면 그 의무는 사라집니다. 할 수 없는 것이 의무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일을 거룩히 지내야할 계명은 지켜야 합니다. 그 계명의 훌륭한 실천이 주일미사참례이지만 그밖에도 기도, 선행, 희생 등 다른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신자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 식사전후 기도를 하지 못했다고 괴로워하는 교우들이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고 그리스도인답게 잘 살지도 못하는 데 괜히 주님의 이름에 누가 될까봐 그러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이 음식이 내 앞에 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들어갔는지 잘 알고 무엇보다도 이 음식으로 나를 살게 하시는 하느님께 정말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끝없이 지켜야 할 사랑의 의무, 가장 작은이들을 돌보는 일은 하지 않고 어쩌면 나중에 사라질지도 모르는 의무들에만 열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보여주는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봐야 하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에 지극히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전이 있을 거라고 상상할지 모르지만 하느님 나라에는 그런 성전이 없습니다. 하느님이 곧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묵시 21,22).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사람은 여기에 사나 저기에 사나 그리고 하느님 나라에 있으나 한결같습니다. 이웃, 특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을 보살피고 도와주며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면 하느님의 말씀을 잘 지킬 것이고 그는 언제나 삼위일체 이신 하느님 안에서 살 것입니다, 영원히.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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