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다른 이들이 함께 살아가기(대림 2주일, 12월 4일)

이종훈

다른 이들이 함께 살아가기(대림 2주일, 12월 4일)

 

수도회 세계총회 동안 81개국에서 100여명의 대의원들이 모여서 한 달 가량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 여러 모임에서 자주 만났던 형제들도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형제들은 처음 만나는 이들이었습니다. 언어, 피부색, 문화 등은 달랐지만 공동체 생활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회의가 열린 그곳은 태국 관구에서 운영하는 복지, 재활 센터 같은 곳으로 장애인들과 버림받은 아이들을 돌보고 재활, 자활 교육을 시키는 곳이었습니다. 우리 형제들뿐만 아니라 그들과도 넓은 의미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한 장애우는 소리 없이 대의원 모두의 시선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는 회의장 내에서 두 손이 없이 두 팔로만 촬영을 하고, 휴식 시간에는 휴대폰으로 검색하고, 출퇴근은 오토바이를 이용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가 놀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게 익숙해져서 두 손이 없고 다리를 절며 회의장 이곳저곳을 오가며 촬영하는 그의 모습에 거의 특별한 눈길을 주지 않게 되었고, 더 이상 휴식 시간에 그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도 총회 공동체 식구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밖에도 전동 휠체어를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형제들의 안내원 역할을 하는 자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처음에는 서먹서먹했던 분위기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농담도 주고받고 장난도 치고, 말이 잘 안 통하면 몸으로, 그림으로, 그냥 미소로, 때로는 통역자의 도움을 받아가며 간단한 인사와 대화를 나누며 친밀감을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공동체를 이루어 갔습니다. 문화도 언어도 다르지만 만국 공통어가 있음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것은 몸짓이 아니라, 친절 배려와 같은 사랑입니다. 그것이 서로 다른 너와 나를 하나로 묶어 줍니다.

 

세례자 요한은 세상을 향해 외쳤습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 그가 그렇게 외친 것은 세상이 자신 뒤에 오실 구세주를 맞이할 수 있게 잘 준비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지고,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루카 3,5)’ 오실 그 분께서 우리들 안으로 곧장 빨리 들어오시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사는 세상을 이사야 예언서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이사 11, 6-9).”

 

황당한 상상이지만, 사실 우리는 이런 공동체와 세상을 바랍니다. 한 마디로, 서로 믿고 사랑하는 세상입니다. 나보다 너를 먼저 생각하고, 억지로 나와 다른 너를 나처럼 만들려 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서로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우리가 함께 한 곳,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함께 바라보아야 할 그 한 곳은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듣고 세례로 다시 태어난 새로운 민족, 하느님의 백성입니다. 우리가 듣고 믿는 그 복음은 본당 울타리 안에서만 울리는 그들만 듣는 소식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상 모든 사람과 피조물들이 그 소식을 듣기를 바라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복음을 세상의 언어로 번역하자면 인간 존엄, 인권 존중이 그 본뜻에 가장 가까운 표현이 될 겁니다. 생명이 지닌 천부적 권리를 지키고 그것을 넘어 서로 다른 이들이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다스리는 원리가 복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의 모습을 담고 있고, 그 중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닮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서로 보호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이념, 철학, 법, 제도, 관습과 통념 그 위에 복음의 가치를 두고 살아갑니다. 비복음적인 것들은 철저히 우리의 삶에서 몰아내려고 애씁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그 안에서 그리고 그것과 더불어 살아와서 이미 나의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다고 해도 그것이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면 두렵고 떨리지만 그것을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이런 삶의 선택과 방식은 교회 울타리를 넘어 온 세상에 전해져야 합니다. 우리의 언어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잘 알고 익숙한 언어로 표현합니다. 특히 소외된 사람들, 억눌린 사람들, 빼앗긴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다가가서 전해주어야 합니다. 이를 두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과 공동체는 주님께서 가리켜 주시는 그 길을 잘 식별하여야합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안위를 떠나 용기를 갖고 복음의 빛이 필요한 모든 ‘변방’으로 가라는 부르심을 따르도록 요청 받고 있는 것입니다(『복음의 기쁨』 20항).’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가 움직이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2코린 5,14.15).”

 

하느님께서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심을 듣고 믿는 우리는 그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고 나눕니다. 친절, 배려, 봉사 그리고 때로는 저항과 인내로써 폭력을 제외한 모든 평화로운 방법으로 변방에 사는 이웃을 사랑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전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우리를 두고 교회라는 조직의 세력을 확장하려는 것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런 것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 안에서도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자신 뒤에 오시는 분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고 있었듯이 우리도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 마음을 움직이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마태 3,11). 오직 그분만이 우리 안에 참된 평화를 이루어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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