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7월 3일(성 토마사도) 믿음의 증거

이종훈

7월 3일(성 토마사도) 믿음의 증거

 

토마스 사도 축일이다. 예수님이 죽은 라자로를 살리러 가시려고 하자 다른 제자들은 거기에는 당신께 적대적인 유다인들이 있다고 주저했지만 그는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하며 예수님의 뒤를 따랐다(요한 11,16). 예수님이 어디론가 가신다며 제자들도 그 길을 알고 있다고 하시자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요한 14,5)?”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는 다른 동료제자들의 증언을 듣고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 20,25).”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자신 앞에 다시 나타나신 주님을 뵙고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이라고 고백하였다.

 

토마스 사도는 아주 솔직하고 강직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죽을지언정 의로운 것을 따르려하고, 스승님의 말씀이라도 모르는 건 모르는 것이었다. 다른 모든 동료들의 증언에도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믿을 수 없었다. 죽은 라자로를 되살리셨지만 스스로 죽음에서 일어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분이 하느님이 아니시라면 말이다.

 

그의 솔직함과 강직함이 그 아름다운 고백,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을 만들었을 것이다. 토마스 사도만이 예수님을 하느님이라고 고백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지만 그분이 붙잡혀가시자 세 번씩이나 그분을 모른다고 했다가 다시 눈물을 흘리며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토마스, 베드로 사도 모두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결이 다르다. 토마스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했다면 베드로는 그것을 넘어 다녔다. 그리고 예수님을 하느님이라고 고백한 제자는 토마스가 처음이었다.

 

하느님은 인간의 인식을 초월해계시다. 그분이 알려주시지 않으면 알 수 없고, 보여주시지 않으면 볼 수 없다. 그래서 그분은 인식과 경험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다. 예수님도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고 말씀하셨다. 복음서를 쓴 목적도 그분을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우리는 하느님을 볼 수 없다. 볼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고 아니 계신 것이 아니다. 그 대신 그분은 당신의 현존을 믿을만한 증거들을 계속 보여주신다.

 

약하지만 선한 이들의 승리, 작은이들의 용감한 행동들이 그런 것들이다. 아파트 경비실에 에어컨 설치를 결정했다고 한다. 운영위원회에서는 반대했지만 주민들 전체는 압도적으로 찬성했다. 한 달에 100원씩만 더 부담하면 되는 것이었다. 어린 학생들이 ‘조금 불편해도 괜찮아요.’ 하며 급식조리사들의 파업을 지지했다. 그들이 자신들을 위해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보고 알았기 때문일 거다. 큰 감동이다. 이외에도 세상에는 하느님이 살아 계시다는 크고 작은 증거들은 차고 넘칠 것이다(요한 21,25). 우리에게 하느님께 대한 무지는 자연스럽지만, 사람들이 그분을 모른다고 해서 그분을 자신의 배를 불리는 데 이용하거나 그분이 살아계심을 믿지 않음은 비겁하다.

 

주님, 주님은 저 너머에 그리고 저희 안에서 저희와 함께 생활하신다고 믿습니다. 때로는 그 믿음이 흔들리지만 주님께서 당신 현존의 증거들을 이렇게 보여주시니 다시 믿음을 새롭게 합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그 증거들을 잘 알아보게 저희 눈과 마음을 인도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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