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7월 17일 ‘이것’

이종훈

7월 17일 ‘이것’

 

예수님은 이곳저곳을 다니시며 열정적으로 복음을 선포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당신이 그렇게 많은 기적을 일으키며 가르치셨는데도 사람들은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그런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저주에 가까운 예언을 하셨다(마태 11,20-24). 무척 속상하셨나 보다.

 

그런데 예수님의 낙담을 넘은 분노가 갑자기 기쁨과 환희로 바뀌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마태 11,25-26).”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낙담과 절망이 어떻게 180도 바뀌어 기쁨과 환희로 바뀐 것일까?

 

루카 복음사가는 일흔두 제자가 선교를 마치고 돌아와 기뻐하며 나눈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된 것으로 보도한다(루카 10,17-20).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의 제자들은 훌륭한 인재들이 아니었다. 당신 표현대로 정말 철부지 같은 사람들이었는데, 그저 당신 말씀만 믿고 그대로 했더니 스승님 말씀대로 진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기뻐하고 흥분한 제자들을 보시고 또 복음을 받아들였을 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하셨을까?

 

합리적이지만 그것은 여전히 내 상상이고 추측이다. 내가 아는 건 예수님은 크게 실망하셨지만 그 어둠과 절망 속에서 뭔가를 발견하시고 기뻐하셨다는 것과,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신 아버지의 이것(마태 11,25)’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집트 왕자에서 양치기로 전락한 모세가 광야에서 하느님을 만나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것과 하느님이 광야의 잡초 무더기에서 당신을 드러내셨다는 사실(탈출 3,4)이 예수님 마음에 있었던 ‘이것’을 아는 데 도움이 될까?

 

순수한 마음만으로는 세상살이가 힘겹다. 알아야 할 것도 익혀야 할 재능도 많다. 선교도 마찬가지다. 오롯한 신앙으로 기도만 해서는 이 복잡한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닐 텐데. 어두워진 예수님 얼굴을 밝게 해주었던 그 ‘이것’은 무엇일까? 철부지 어린이의 마음으로 이 복잡하고 거친 세상 속에서 산다는 건 어떤 모습일까? 어찌 보면 예수님도 선교 사업에 실패하신 것이지 않나? 하지만 그렇게 수천 년이 지났어도 나 같은 사람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눈과 마음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무엇이 있는 게 분명하다.

 

주님, 철부지 어린이와 같이 열린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 마음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무한한 신뢰입니다. 세상에는 그런 것이 없어 쉽지는 않지만 사랑이 지닌 창조의 힘에 의지하여 주님의 말씀에 가슴을 활짝 열어젖힙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의 ‘예(Fiat)’가 이루어낸 이 놀라운 일들을 보고 주님을 더욱 신뢰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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