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8월 25일(연중 21주일) 좁은 문

이종훈

8월 25일(연중 21주일) 좁은 문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중에 어떤 사람이 다가와 물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루카 13,23)” 그 당시 율법학자들과 라삐들은 구원의 대상과 그 숫자에 대한 논의를 자주 했었다고 하니 그 질문은 구세주이신 예수님께 한 특별한 것이 아니라 구원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한 라삐에게 던진 질문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요즘말로 해석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해야 의미 있게 살 수 있나? 인생이란? 어떻게 하면 마음이 평화로울까?’ 정도가 될 것 같다. 이런 질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 모두는 입을 모아 이렇게 대답한다. ‘예수님을 따라 그분처럼 살면 된다.’

 

예수님은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루카 13,24).”하고 대답하셨다. 그런데 이 말씀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기보다는 모든 사람에게 보내시는 초대인 것 같다. 여기서 좁은 문은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라기보다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곳을 의미하셨던 같다. 그렇지 않다면 유다인뿐만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이 몰려야 그 문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이다(루카 13,29). 예수님을 몰라도 그분처럼 사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 나라에서 그분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오직 예수님만 알고 그분만 들어가실 수 있는 하늘나라의 문을 모든 인류에게 열어 놓으셨다.

 

그렇게 모든 이에게 알려졌지만 아무나 다 들어갈 수는 없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다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세례가 입장권이 아니고 성당에서만 지내고 성직자와 수도자와 친분이 있다거나 하느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또 기적 같은 위대한 일을 이루었다고 무조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이만이 들어간다(마태 7,21-22). 예수님의 삶 전체가 곧 하느님의 뜻이었다. 그분은 설교만이 아니라 병자들을 무상으로 치유해주셨고 가난한 이들과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다. 게다가 누가 죄인을 위해 수난과 죽음으로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걸어들어갈 수 있겠는가? 그 죄인을 지독히 사랑하지 않고서는 그럴 수 없다. 우리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하느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다. 이제 그 문이 우리에게도 열렸고 그 일을 우리도 할 수 있게 초대하셨다. 원수를 사랑하고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사랑 말이다.

 

예수님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하지만 그분을 주님이라고 믿고 따른다고 내 안의 죄로 기울어지는 성향도 함께 사라지지 않는다. 죄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는 없어도 예수님처럼 이웃을 사랑할 수는 있다. 예수님의 희생, 하느님의 보속과 죽음으로 쌓여진 은총은 무한하다. 그렇다고 죄를 피하려는 노력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 또한 하느님을 사랑함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예수님처럼 이웃을 사랑하려고 훨씬 더 많이 노력한다. 주님이 주신 계명은 서로 사랑함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 한 분밖에 없다. 그 좁은 문이 우리와 온 인류에게 열렸다. 그 문은 좁아서 한 사람만 통과할 수 있다. 여럿이 함께 혹은 나를 대신해서 남이 들어갈 수는 없다. 인간적인 의지만으로는 안 되겠지만 세례로 받은 은총이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을 뛰어넘어 하느님을 닮은 이타성으로 옮아가게 도와준다. 하늘나라의 문이 좁아도 다 들어갈 수 있다. 들어가려고 하지 않으면 그 문은 더 좁아 보이고 들어갈 수 없다고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다른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널찍한 길과 넓은 문으로 들어가 멸망하게 된다(마태 7,13).

 

예수님,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셨던 주님, 이 주어진 짧은 생을 주님처럼 살게 도와주소서. 주님이 지니셨던 하느님 아버지와의 친밀감을 저에게도 주소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아드님께 내려 받은 은총을 저에게 전달해주셔서 무엇이든지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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