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iece of sunshine

Acceptance 받아들임

 

How would you feel if you had to sit in a wheelchair for the rest of your life without being able to walk properly for nearly 20 years after marriage or the ordination?

“You look so peaceful. What is the secret to living peacefully in the midst of suffering?”

“It is a matter of acceptance. I accepted an unexpected accident well.”

The secret for him to be able to live happily with inner peace, joy and gratitude despite many trials and suffering was acceptance, in a word. No matter what the circumstances are, accepting the given reality was the shortcut to inner peace. In fact, genuinely accepting an accident or suffering is the basis of recovery and healing.

What he learned through his unexpected accident is that God is always with us, no matter the situation. Sharing his life by talking to the visitors who came to comfort him was also a source of great strength for him.

In fact, we don’t have to worry about anything, for the Lord knows and fills everything. God, who is with us all the time and everywhere, bestows upon us trials, but he also gives us the strength to endure.

His only wish is to love people and live according to his word. His pastoral motto is to live life with others and to love everyone.

Born the eighth of five sons and four daughters, he liked to attend Mass since childhood. It was because a girl he liked went to Mass every day.

As he continued to attend Mass every day, the desire to become a priest sprouted and he started attending the vocational meetings of the secondary school. His older brother, who was five years older, first became a priest and his second older sister and youngest sister became nuns as well.

He entered the seminary in 1988 and was ordained a priest in 1997. During his seminary days, he enjoyed sports and had a good life. With a love for all people and a desire to be with them, he chose “Take care of my sheep” as his ordination scripture.

Being a priest was another new beginning, filled with joy, satisfaction and excitement. Along with his fellow priests, he visited various places and had the joy of saying his first Mass in each place. One day, three months after the first Mass, he was in an accident. He was driving while drowsy.

He became paralyzed and has been forced to rely on a wheelchair for mobility. There is no sensation left in the lower body. He tends to get pressure sores if he sits or lies for too long.

Being unable to serve at the church, he spent 12 years as director of Jang Joo-ki Joseph Rehabilitation Center and eight years as head of Salesio’s House in Jecheon.

A few years ago, a platform was established near the altar at Hakseong-dong Catholic Church so that he could enter to celebrate Mass in a wheelchair. This year, he celebrated the 25th anniversary of his priesthood with his fellow clergymen.

At the time of priestly ordination, he was full of dreams, but his body had been damaged. Nevertheless, his heart and vision soared like a bird, singing peace and love. And God made a miracle for him.

 

 

 

받아들임

 

 

결혼이나 사제서품 이후 거의 20년 동안 제대로 걸어 다니지 못한 채 평생 휠체어에 앉아 지내야 한다면 그 심정은 어떨까?

 

신부님은 참 평온해 보이십니다. 고통 속에서도 평온하게 살아가는 비결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받아들임이지요. 저는 예기치 않은 사고를 잘 받아들였습니다.

 

신부님이 많은 시련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내적 평화와 기쁨,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비결은 한마디로 받아들임이었다. 상황이 어떻든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내적 평화에 이르는 지름길이었다. 실제로 어떤 사고나 고통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회복과 치유의 바탕이다,

 

예기치 않은 사고를 통해 신부님이 배운 것은, 하느님께서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늘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이다. 신부님을 위로해 주려고 찾아온 이들과 이야기하며 삶을 나눈 것은 오히려 큰 힘의 샘이었다.

 

사실, 우리는 무엇 하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채워주시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지만 견뎌낼 힘도 주신다.

 

신부님의 유일한 소원은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하느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신부님의 사목 지침은 사람들과 함께하며 모든 이를 사랑하는 삶이다.

 

5 4녀 가운데 여덟째로 태어난 신부님은 어렸을 때부터 미사에 즐겨 참례했다. 그 당시 좋아했던 소녀가 날마다 미사에 다녔기 때문이다.

 

날마다 미사에 다니다 보니 사제가 되려는 열망이 자연스럽게 싹텄고, 중고등부 성소모임에 다니게 되었다. 5년 터울인 형이 먼저 사제가 되었고, 둘째 누나와 막내 여동생은 수녀가 되었다.

 

신부님은 1988년 신학교에 들어가 1997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신학교 시절 스포츠를 즐겼고 무난한 나날을 보냈다. 모든 이를 사랑하며 함께하려는 열망을 지닌 신부님은 내 양들을 돌보아라는 말씀을 서품 성구로 선택했다.

 

사제가 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기쁨과 보람, 설렘으로 가득 찼다. 신부님은 동료 사제들과 함께 여러 곳을 방문하며 첫 미사를 드리는 기쁨을 누렸다. 그런데 첫 미사를 드린 지 3개월이 되던 어느 날 신부님은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졸음운전을 했던 것이다.

 

그 이후 몸이 마비되어 휠체어에 의존해야만 했다. 하반신에는 아무런 감각도 남아 있지 않다. 너무 오래 앉거나 누워 있으면 욕창이 생기곤 한다.

 

그 동안 일반 성당에서는 사목을 할 수 없어 장주기요셉재활원 원장으로 12, 제천 살레시오의집 원장으로 8년을 보냈다.

 

몇 년 전, 학성동 성당 제단을 개조하여 휠체어를 타고 들어가 미사를 드리게 되었다. 올해, 신부님은 동료 사제들과 함께 사제품 25주년을 기념했다.

 

사제서품을 받을 무렵 신부님은 꿈으로 가득했지만 몸이 망가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신부님의 마음과 비전은 새처럼 날아올라 평화와 사랑을 노래한다. 하느님께서 신부님을 위해 기적을 이루신 것이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