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기부

 

[마신부와 함께 하는 성경강의] 마르코복음 8장

겸손기도 1,651 2013-10-28 14:26:22

마르코 복음 8장


사천명을 먹이시다

지난 번 6장에서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에 이어 이번에는 사천명입니다. 따라서 달리 이 기적 자체에 대해서는 설명해 드릴 것이 없습니다. 이 역시 주님의 은총의 잔치, 곧 '미사'에 대한 전이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여기서는 예수님의 첫번째 말씀에 주목해 보았으면 합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예수님의 마음은 군중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됩니다. 예수님은 그 군중이 어디에서 어떻게 온 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도 알고 계셨지요. 그들이 어떻게 고통받게 될 줄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공감'은 바로 예수님의 행동으로 이어지고 결국 사천명을 먹이는 기적으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 역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가 타인의 순수한 아픔에 공감하기 시작할 때에 우리에게는 예수님께서 하신 힘이 솟아나게 됩니다. 참으로 많은 '무감각한'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주변 인물들은 그저 '대상'일 뿐,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런 이들 사이에서 '따스한 마음' '느낄 수 있는 마음'을 지닌 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에서 오는 표징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딱 잘라 거절하십니다. 실제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표징은 이미 주어지고 있는데 그들은 그 표징을 바라보지 못하고, 아니 보려고 하지 않는 셈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의 욕구를 채워줄 표징이지 실제로 내려오는 표징이 아닌 셈이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욕구에 놀아날 분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표징은 이미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당신 자체가 표징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분을 의심하고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땅이 솟아 오르던지 하늘이 무너지던지 구름이 변화하던지 기괴한 동물이 나타나던지 하는 것들이 필요했겠지요. 하지만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표징이 아니라 표징을 볼 줄 아는 눈이었고 그들은 결국 실패했습니다. 도저히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시기심과 탐욕이 그들의 눈을 가로막아 장님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누룩

누룩이라는 것은 자그마한 빵을 엄청 부풀리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 사람들 사이에도 그렇게 부풀려진 존재들이 있습니다. 주로는 권력과 명예, 그리고 돈이 가득한 사람들입니다. 누룩을 뺀 채로 빵을 구우면 원래 크기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쪼그라듭니다. 있던 물기가 빠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누룩을 조금 넣으면 엄청 부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실제로 그렇게 대단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옷을 벗겨놓고 직업도 생각지 않고 같은 자리에 놓아두면 너나 나나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헌데 우리 사이에 정한 분별 기준에 따라서 누군가는 엄청 높고 존귀한 사람이 되고 다른 누군가는 전혀 바닥을 기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이러한 인간 사이의 차별이 바로 '누룩'입니다. 우리는 이런 누룩이 우리 안에 깃들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특히 그 안에 깃든 영혼을 바탕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제자들의 몰이해

하지만 제자들도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께서 '빵' 이야기를 하는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가리키는 달을 보지 못하고 그 손가락만 바라보는 셈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답답하셨을지는 뻔합니다. 더군다나 불과 얼마 전에 오천명과 사천명을 먹이는 빵의 기적을 일으키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여전히 현세적인 걱정에 빠져 살아갑니다. 예수님의 믿음을 받아들여 가장 뜨겁게 불타 올라야 할 그들이 세상 걱정에 빠져 그 능력을 전혀 펴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은 답답함에 제자들에게 "그렇게도 깨닫지 못하느냐?"고 몇번이고 주의를 주고 또 줍니다.


벳사이다의 눈먼 이

이 부분은 제가 참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예수님 앞에 사람들이 눈 먼 이를 데리고 옵니다. 마르코 복음 10장에 예리코의 소경이 나오는데 이 사람은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는 그 자신이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마르코의 부분에서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옵니다. 이는 중풍병자와는 또 다른 모습입니다.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이들은 지붕까지 뜯어내는 열성이 있었지만 지금 이 소경을 데리고 온 이들은 단순한 호기심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를 데리고 '마을 밖으로'까지 데리고 나가십니다. 그리고 1차로 치유를 감행하십니다. 물론 말씀 만으로도 치유할 수 있었지만 그가 분명히 느낄 수 있게 그의 눈에 침을 바르는 것도 잊지 않으십니다. 1차적으로 치유를 받은 이에게 보이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즉 예수님은 이 사람의 '영적인 시야'를 먼저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데리고 온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지요. 그들은 걸어다니는 나무토막 같았습니다. 영적인 생명, 즉 사랑이 없는 존재들이었지요. 그리고 나서 다시 눈에 손을 얹어 육체의 시야까지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저 마을로 들어가지 마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그 마을에는 걸어다니는 나무토막 같은 이들 뿐이었기 때문에 그가 그 마을에 있는 동안에는 그를 데리고 온 이들의 호기심과 탐욕의 희생물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고백

예수님은 먼저 사람들의 의견을 물으십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천자만별이었습니다. 누구는 '세례자 요한', 누구는 '엘리야', 누구는 '예언자 중의 한 분'이라고 하면서 모두 예수님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 대한 그들의 선입견과 욕망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예수님일 뿐이었지요. 예수님을 올바르게 보려는 사람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의견을 묻고 그 가운데 베드로가 나서서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신앙고백을 합니다. 지금 우리들은 베드로의 고백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내면에 진정한 '예수님의 모습'은 과연 무엇일지 우리 스스로 살펴야 합니다. 왜냐하면 때로 수많은 이들에게 예수님은 단순한 '위대한 사람'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내면에는 '위대한 이건희, 위대한 빌게이츠, 위대한 싸이' 등등의 이미지가 잠재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우리가 바라고 찾는 것대로 우리 내면의 우상의 이미지를 형상화 해 놓은 것이지요. 이에 따라서 예수님 역시도 우리 욕구의 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리고 맙니다. 그냥 내가 '편하게' 사는 일종의 보험 같은 수단인 셈이지요. 과연 우리 내면에 예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수난과 부활의 첫 예고

베드로의 고백을 들은 예수님은 그들의 신앙을 보고 첫번째 당신 운명을 예고 하십니다. 예수님으로서는 불보듯 뻔한 일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의 우리야 다음에 일어날 일을 모조리 알고 있으니 그렇다지만 당시의 제자들에게는 깜짝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지금 우리 삶 안에서 주임 신부님이 이렇게 말하면 우리도 깜짝 놀랄 겁니다.

"사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잘 되자고 신앙생활 하는 거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이 세상에서 고난 당하고 더욱 고통받고 결국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죽어서 그리고 난 뒤에 살아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몇몇 신자들이 벌떡 일어나 나가버릴지도 모릅니다. 준비되지 않은 이들에게 신앙의 첫 맛은 달콤하니까요. 그들은 멋들어진 전례와 뭔가 있어보이는 신부님, 그리고 사랑스러운 신자들의 세속적 달콤함을 찾아 옵니다. 헌데 실제로 부딪히는 것은 맘에 안드는 주임 사제와, 지겹기만 한 전례, 그리고 신자들과 이런 저런 속상한 일들이 가득하지요. 그래서 누군가는 결심을 하고 신앙을 저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예수님의 말씀 속에 이미 녹아들어 있었던, 그리고 예고되어 있었던 것들입니다. 그 환상은 깨어져야 했던 것들이 맞고 결국 깨어지게 된 것이고 그리고 그들은 다시 세상을 찾아 떠나간 셈입니다. 물론 그 환상이 올바로 깨어지도록 도와주지 못한 교회의 잘못도 있겠지만 결국 최종 선택은 그들 자신이 하는 셈입니다. 그들은 영원한 생명보다는 현세의 생명을 택한 셈이지요. 너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예수님에게 이 말을 명백히 듣고는 깜짝 놀라서 예수님을 붙들고 반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우리들은 과연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여전히 사람의 일에만 빠져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을 따르는 방법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이 8장 안에서 계속 설명 드렸던 것의 종합편인 셈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과 사랑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그분이 약속하시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원의를 잘 살피고 다시 길을 걸어야 합니다. 과연 우리가 이 길을 시작한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피고 촛점과 방향을 잘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뭔가 되려고 이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누구든 언젠가는 뒤로 남겨두고 떠나가게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살아있는 동안 우리가 지닌 모든 것들로 영생을 위해 헌신하기 위해서라는 이 핵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다음 말씀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여기서 목숨에는 2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육신의 생명이고 다른 하나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는 보다 영원하고 참된 것을 위하여 한시적이고 헛된 것을 버릴 줄 아는 용기를 지녀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은 저에게는 하나의 자랑거리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따라 살아가는 자녀들에게는 멍청해 보이고 수치스러운 말일 뿐입니다. 한 번 보도록 하지요. 훗날 미소짓는 이가 누가 될지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희망을 품고 이 땅에 사는 사람은 훨씬 더 삶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됩니다. 실제적으로도 그러합니다.

"절개 없고 죄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사여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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