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기부

 

[마신부의 성경강의] 마르코 복음 13장

겸손기도 1,032 2014-01-07 10:03:51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시다.

외적인 것의 아름다움에 곧잘 경탄을 보이는 우리들입니다. 그 수많은 성지순례며 피정을 가서 우리가 보고 오는 것은 적지 않은 경우 거기에 있는 사물들의 외견입니다. 거대하고 장엄한 석조 건물들의 위용 앞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간접체험할 수도 있겠으나 결국 하느님은 외적인 무언가로 드러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내면을 통해서 다가오시는 분이시니까요. 예수님부터 말씀하십니다. "여기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이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져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어 지금 남아있는 것이라곤 그 흔적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단순이 이 외적인 건물의 파괴만을 예언했다고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외적인 것에 감탄하고 집착하는 우리의 마음을 일깨우시는 셈입니다. 우리는 허물어지지 않는 성전을 쌓아야 합니다.



재난의 시작

예수님의 말씀에 눈치를 챈 몇몇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시기와 그때의 표징을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이 아주 진지한 어조로 그때에 일어날 일을 예견해 주십니다.



속임

그때에는 수많은 이들이 서로를 속일 것입니다. 심지어는 거룩한 것을 대상으로도 사람들을 속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간한 머리로는 그들을 분별해 내기가 쉽지 않을 정도일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의 지혜를 받은 이들만이 그 속임을 분별해 낼 것입니다. 벌써부터 이 땅에는 그런 이들이 적잖이 있었습니다. 특히 자기 자신을 '내가 그리스도다.'라고 하는 수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전쟁

그때에는 전쟁도 빈번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대규모의 무차별 살상이 자행되고 인간성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 바로 '전쟁'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일들이 '반드시 벌어지겠지만'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전쟁 역시도 불의한 이들 앞에 내려지는 하느님의 심판의 도구로 작용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마지막은 아닙니다.



국가적 분쟁과 지진과 기근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아니 이미 일어난 지가 한참이 되었습니다. 이미 진통은 시작된 셈이지요. 사실 인간사에서 민족간의 분쟁이 있고 지진이 있고 기근이 있었지만 해가 갈수록 심각한 양상이 되어가고 있고, 과거의 국지적인 난국이 아닌 지금은 한 분쟁이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인류이 진통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 악의 열매가 익어가는 것이 보입니다. 하느님은 그 진통의 기간 동안 기다리고 계시는 셈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박해와 복음선포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의회에 넘기고 매질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총독과 임금들 앞에서 증언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최우선 사명은 '복음을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 어떤 박해를 무릎쓰고라도 복음은 방방 곡곡에 전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이 사명을 맡고 있는 셈입니다. 저는 볼리비아에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리에서 말이지요.



증언

우리는 말할 거리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그 순간에 가장 적합한 말, 또는 '침묵'을 성령께서는 선물하실 것입니다. 어둠의 세력 앞에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진리가 없고 그들이 하는 말은 모두 거짓입니다. 우리는 내면에 진리와 사랑을 품고 그들 앞에 나서기만 하면 그 이후로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정신을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깨어지는 관계

지상에서 맺은 모든 관계,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친밀했다고 생각하던 관계의 파괴를 보게 될 것입니다. 오직 그 때에는 '하느님'과 각자의 관계가 드러나게 될 것이고 그 밖의 관계는 형제든, 부모자식이든 아무런 상관도 없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이미 수많은 관계는 '탐욕'으로 바스러지고 있는 중입니다. 돈이 있는 곳에 그 어떤 관계도 올바로 서 있을 수 없습니다. 그 가운데 '그리스도인' 즉 하느님을 찾고 섬기는 이들은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인내로이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가장 큰 재난

"있어서는 안 될 곳에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이 서 있는 것을 보거든"

예수님의 이 말씀은 과연 무슨 뜻일까요? 이건 저로서도 알아들을 재간이 없습니다. 상상력을 통해서 여러가지 것들을 유추해 볼 수는 있습니다. 성전 제단 위에 무언가를 갖다 놓는 것일까요? 아니면 무슨 표시를 새기는 것일까요? 하지만 저는 이 구절을 '영성적'으로 바라보고 싶습니다.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황폐함을 일으키는 것, 그것은 영성적인 면으로 여러가지 악덕들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악' 그 자체가 그것이 되겠지요. 이 '악'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황폐하게 만드는 일등공신이니까요. 거기에서 빚어져 나오는 온갓 악한 것들, 즉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의 모든 것들이 바로 '황폐함을 일으키는 것'들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있어서는 안될 곳은 어디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 안의 거룩한 곳, 즉 '영혼'입니다. 사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이들을 항상 마주하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아무리 방어운전을 해도 갖다 박으려는 운전자는 어쩔 수가 없는 셈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에 대한 지침을 주십니다.



달아나라 아쉬워하거나 돌아서지 마라

그런 이들을 마주했을 때에 우리의 첫번째 행동양식은 '달아나기'입니다. 우리는 그런 이들과 맞서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무엇이든지 '파괴할' 속셈이기에 우리가 아무리 정의와 진리와 선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그들에게 맞서는 순간 그들의 파괴공작에 넘어가는 셈입니다.



다음 지침은 '아쉬워하지 않기'입니다. 그 어떤 소중한 가치들이 남아있다 하더라도 그런 이들 앞에서는 그것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지상의 그 어떤 소중한 재화일지라도 그 어떤 명예로운 직위나 권력의 자리일지라도 그것을 탐하고 달려드는 이들 앞에서는 그런 것들을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그것을 아쉬워하는 우리들을 너무나 쉽게 파괴해 버릴 것입니다.



마지막 지침은 '돌아서지 않기'입니다. 우리는 달아나고 아쉬워않고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한번 호기심에라도 흘긋 뒤를 돌아보다가는 그대로 롯의 아내처럼 소금 기둥이 되어 버릴지도 모릅니다. 악의를 지닌 이들 앞에서 여러분은 제 갈길을 가십시오.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

이 시기에 무언가를 보살펴야 하는 이들은 참으로 불행합니다. 특히나 그 애착이 심하게 붙어 있으면 있을수록 우리는 '불행한' 사람들이 됩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하고 안타깝다고 선언하시는 게 아니라 '불행하다'고 선언 하십니다. 이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렸다는 여자들은 단순히 실제적인 아이를 가진 여성들로 해석하기보다는 분명한 영적 의미를 지닌 것입니다. 우리가 절대로 떼어낼 수 없는 애착을 지니고 있다면 우리는 곧 '임신한 여자' 혹은 '젖먹이가 딸린 여자'가 되는 셈입니다. 저 역시도 이 정도만 설명하고 말겠습니다.



겨울

겨울이라는 것은 추위가 감돌고 온기가 있는 집 말고는 머물 곳이 없는 시기입니다. 즉 겨울은 우리의 영성적인 냉담한 상태를 말합니다. 단순히 성당을 나오지 않아서 '냉담'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을 찾지 않고 '냉담'해지는 시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기도하여라'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가 꾸준히 기도 안에 머무른다면 우리는 이 시기를 피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달리 말해 꾸준한 기도는 언제나 우리의 영성적 시기를 '봄이나 여름, 가을'로 꾸며주는 셈입니다.



환난

바로 이 최악의 시기에 환난은 다가옵니다. 어떤 환난이 될는지 저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표현을 빌면 창조 이래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환난이라고 표현하십니다. 이 환난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사람이 이 땅에 숨을 쉬고 살아있는 이들 중에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고난을 떠올리더라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환난'에 부합하는 고통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연결시켜 말해오는 바, 이 환난은 단순한 육체적 고통이라기보다는 '영적 시련'이 될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세상을 향한 우리의 모든 애착을 끊을 수 있는 '최악의 영적 시련'이 될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과연 뭘까요? 예수님의 영적 고통을 떠올려 보십시오. 예수님의 마지막 순간의 '억울한 느낌', '버림받은 느낌', 모든 이에게 심지어 자신을 파견한 '아버지'에게도 버림받은 그 느낌을 짐작해 볼 수 있다면 아마 이 영적 '환난'의 정도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줄여진 날수

환난의 시기는 다행히 줄여 졌습니다. 하느님에게 이미 '선택받은 이들'이 있고 그들을 위해서는 이 환난의 시기가 줄여졌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견뎌내지 못할 시련과 환난을 마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인내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속임

그리고 예수님은 다시 '속임'에 대해서 경고하십니다. 그 마지막 순간에 더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의 발현을 들고 나와서 순진한 이들을 속일 것이며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도 판을 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표징과 이적들'로 선택된 이들마저 속이려고 들 것입니다. 애시당초 이런 '감각적'인 것들을 닫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감각적인 것에서 신앙의 표지를 구하려는 신앙인들은 훗날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이들로 속아넘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는 조심하여라. 내가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해 둔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우리의 지력에 맡겨 놓으셨습니다. 다만 이 모든 내용들은 '읽는 이'를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심지어는 이러한 분명한 예언의 내용들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이들이 있으니 이런 이들을 위해서 우리는 '복음선포'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분명히 알고 피할 수 있는 것들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예방약이 나와 있는 질병은 예방해야 하는 셈이지요.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이제 예수님은 당신의 재림을 예고하십니다. 그 모든 환난이 지나가고 나면 '해'와 '달'이 빛을 내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낮을 비춰오던 해와 달은 과연 무엇의 상징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현세의 사물을 분석하기 위해 사용하던 이성과 그 과거의 빛인 기억들입니다. '별'들은 명예를 상징하고 '하늘의 세력'은 권력을 의미합니다. 그 모든 것들이 빛을 잃고 떨어지고 뒤흔들리고 나면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신비', 즉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이' 선택한 이들을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종교를 선택하고 하느님을 선택했다고 얼마나 많은 순간에 착각을 하고 사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훗날 우리는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께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분이 우리를 부르시고 선택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무화과나무의 교훈

우리는 나무 한 그루의 변화를 보고 계절의 변화를 짐작합니다. 그런 같은 지혜로 우리는 세상의 일들을 보고 계절이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해야 합니다. 우리 인류의 죄악의 수준이 허용 범위를 넘어선 지가 꽤 오래 되었습니다. 위에 언급된 사항들은 영성적으로든 실제적으로든 어느 부분 이미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두려워해야 할 것은 세상 전체의 종말이 아니라 바로 우리 개개인의 종말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이 말을 듣는 우리들에게 이 세대라는 것은 바로 우리 각자의 생의 세대를 말합니다. 이 말을 듣는 모든 이에게 이러한 일들이 개인적으로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말이지요. 한 사람의 생의 끝은 그에게는 곧 세상의 종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말이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으로 당신 말씀의 진실성을 확증합니다.



깨어 있어라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알지 못합니다. 오직 한 분, 아버지만이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로 봐서는 실제로 당신도 전혀 알지 못하셨던 부분임에 틀림 없습니다. 당시 인성과 신성이 하나 되어 계셨지만, 신성은 이 거룩한 신비를 인성에게 드러내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이 하나일진데 이 무슨 말이냐 하고 의아해 하실 분이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의 신비 입니다. 한 분 하느님이시나 성부 성자 성령의 각 위격은 고유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고 서로를 온전히 존중하는 것입니다. (좀 어렵고 난해한 부분이므로 이 정도에서 넘어가겠습니다.) 하느님은 마치 먼 길을 떠나는 사람처럼 모든 이에게 제 자리에서 할 일을 맡기십니다. 그리고 특별히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하십니다. 따라서 문지기를 맡은 사람의 역할은 지대한 것입니다. 문지기, 즉 교회의 장상들과 사제단은 이 역할을 맡아 불을 꺼뜨리지 않고 깨어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이 제 자리에서 일을 열심히 하도록 돕고 나아가 주님을 깨어 기다리며 언제라도 주님이 다가오시는 날 사람들을 일깨워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오, 이 거룩한 사명을 사제들이 이해한다면 좋으련만. 하지만 이 '깨어있음'은 비단 사제들만의 영역은 아닙니다.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이 말씀으로 이 지상명령을 모든 이에게 건네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깨어 있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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