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시기

[순교] 은혜로운 만남

오마리아

죽기까지 신앙을 지켜나가는데 좋은 동반자가 되어 은혜로운 만남을 이룬 순교자들을 소개합니다.

 

13. 배관겸 프란치스코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지 얼마 안 돼 입교. 그는 1791년 신해박해 때에 체포됐으나 신앙을 굳게 지키지 못하고 석방됐다. 그러나 즉시 죄를 뉘우치고 다시 열심히 하느님을 섬기기 시작했고, 면천 양제에서 교우들과 신앙 공동체를 이뤘다… 배교자의 밀고로 붙잡힌 그는 살이 헤지고 팔다리가 부러져 뼈가 드러날 정도로 형벌을 받았으나 영웅적 인내로 참아내다 마침내 순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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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이보현 프란치스코 – 혹독하게 매 맞는 형벌에도 웃으며

충청도 덕산 부유한 양인 집안에서 출생. 아무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난폭한 성격이었으나 천주교 신앙에 귀의한 후에는 성격을 고쳤다고 한다… 배교를 강요당하면서 갖은 고문을 받았으나 굴복하지 않던 그는 마침내 사형선고를 받고 장터로 끌려나가 죽도록 매를 맞았다. 그의 나이 27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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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이언민 마르티노

충청도 덕산에서 출생. 품성이 온순하면서도 강인한 성격과 상당한 학식을 지닌 양반의 아들. 평소 친분이 있던 황사영 알렉시오에게서 교리를 배웠고, 직접 한양으로 올라가 주문모 신부에게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1797년 정사박해 때 자신이 천주교 신자임을 밝히고, 하느님을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바치려 한다고 고백하여 투옥. 심한 형벌을 받아 걸을 수조차 없었던 상태가 되었지만 ‘배교하라, 그러면 그 순간 풀려난다.’라는 매질과 유혹에 대하여 그는 “그렇구 말구. 기쁜 마음으로 내 목숨을 하느님께 바치는 거야”라고 한결같은 대답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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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정산필 베드로 –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 받고 회장에 임명

충청도 덕산 출신 정산필은 조선교회 신앙의 못자리였던 ‘내포교회’ 회장.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보필하다가 회장에 임명. 그는 기도와 독서, 교리교육으로 한 생애를 살았다.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끊임없이 가르치고 교육하며 신앙을 권면하고 격려하는 데 전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감옥에서조차도 그는 갇힌 동료들을 격려했으며, 사형선고문에 서명을 하면서도 전혀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사형 당시 그는 사형수에게 제공되는 마지막 음식을 받고 나서도 꿋꿋했다. 함께 순교한 동료들에게 같이 먹자고 말하면서 남긴 유언은 “천주께서 사람을 위해 창조한 음식이니 마지막으로 감사 기도를 드리고 드십시다. 이제 우리는 천국에 가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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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등 · 김종륜 · 허인백 – 박해 피해 동굴서 생활하다 체포돼 순교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그때가 1868년 9월 14일(음력 7월 28일)이었다. 순교 당시에 그는 십자 성호를 긋고 예수마리아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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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허인백 야고보

경상도 김해에서 농부의 아들로 출생. 24세 때 천주교 신앙에 대해 듣고 입교, 이후로는 아주 열심히 수계 생활을 하여 교우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다. 아내 박조이와 자식들에게도 열심히 교리를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정결을 지키기 위해 아내와 남매처럼 살았으며, 고신극기는 물론 겸손과 인내의 덕을 쌓는 데도 노력하였다. 또 애긍에 힘써 가난한 이와 병든 이들을 많이 도와주었다… 순교 당시에 그는 십자 성호를 긋고 예수, 마리아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고 하며, 그의 시신은 형장까지 따라온 아내에 의해 거두어져 비밀리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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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김종륜 루카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 충청도 공주에서 천주교에 입교한 뒤 열심히 신앙생활.

평소에 특히 화목함을 강조하였고, 어느 누구와도 화목하게 지내려고 노력.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부모를 모시고 울산 죽령 교우촌으로 이주. 여기서 이양등 회장과 허인백을 만나 서로 권면해 가면서 신앙생활. 그때까지도 이곳은 비교적 안전하였다. 그러나 2년 뒤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는 몸이 되었다…순교 당시에 그는 십자 성호를 긋고 예수, 마리아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고 한다.

 

118. 이양등 베드로

경상도 울산의 죽령 교우촌 회장. 본래 성품이 선량하였던 그는 꿀장사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열심히 수계 생활. 그 후 병인박해를 피해 죽령 교우촌으로 이주해 온 허인백과 김종륜을 만나 서로 권면해 가면서 신앙 생활. 그때까지도 이곳은 비교적 안전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교우들과 함께 체포. 경주로 압송되어 가는 동안 이양등 베드로는 동료들의 권면을 잘 받아들여 순교를 결심하였다. 실제로 그는 경주 진영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게 되자 천주교 신자임을 고백하고 굳건하게 신앙을 증거하였다.

 

** 자세한 성인 검색은 성바오로딸수도회 ‘복자 124위’ 자료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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