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시기

[순교] 신앙 안에서 한가족

오마리아

가족 안에서 한 길을 갔던 용감한 순교자들을 소개합니다. 

 

52. 윤지헌 프란치스코

전라도 진산에서 학문으로 이름 있던 집안에서 출생. 1791년 신해박해 때 순교한 윤지충 형으로, 윤지충에게서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 형이 순교하자 고향에서 살 수 없게 되어 가족을 데리고 전라도 고산 운동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교회 서적을 베껴 읽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천주교에 입교시키곤 했다. 주문모 신부에게 성사를 받았고, 이후에는 교회 밀사 황심을 북경에 파견하는 일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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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유중성 마태오 

전라도 전주 부유한 양반 집안에서 출생. 그러나 아주 어렸을 때 부친이 사망한 후 전주 초남에 있는 작은 아버지 유항검의 집에서 자랐다. 순교자 유중철과 유문석은 사촌 형제들. 작은 아버지 유항검과 그 가족들 영향으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유중성은 1801년 박해가 일어나자 어머니를 비롯해 다른 친척들과 함께 체포돼 전주 옥에 갇혔다. 어머니는 체포된 지 얼마 안 돼 석방됐지만 유중성은 다른 친척들과 함께 순교를 약속하면서 굳게 마음을 다졌다. 사촌형수 이순이 등 친척들과 함께 숲정이라고 불리는 전주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그의 나이 18살가량이었다.

 

54. 유문석 요한

전주 초남의 부유한 양반 집안에서 출생. 순교자인 유항검이 부친이고, 유중철은 형이며, 이순이는 형수가 된다. 어려서부터 신앙 안에서 자랐고, 그의 집은 전라도 신앙 공동체의 중심지였다. 주문모 신부가 초남 마을을 방문했을 때 유문석의 나이는 열한 살이었다. 1801년 박해 때, 부친 유항검이 가장 먼저 체포돼 한양으로 압송됐고, 이어 형 유중철과 친척들이 체포돼 전주 옥에 갇혔을 때 다행히 체포되지 않아 유문석은 여름 내내 전주 옥사를 오가며 형에게 음식을 전해 줄 수 있었다. 그러다 유문석도 남은 가족과 함께 체포돼 옥에 갇히고 말았다. 유문석은 형 유중철과 함께 교수형을 받았다. 그의 나이 17살이었고 미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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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박해에 체포된 조카와 고모, 고문과 회유 유혹 이기고 순교

최경환 성인과 7촌 사이로, 성인과 같은 시기에 살았던 최해성(요한, 1811∼1839) 복자는 1839년 9월 6일 원주 강원감영 인근 원주천변 형장에서 순교함으로써 원주 교회 그리스도인의 씨앗이 됐다. 최해성 복자의 고모 최 비르지타(1783∼1839) 또한 같은 해 12월 8일 강원감영 옥에서 목이 졸려 순교함으로써 집안에 뿌리내린 신앙의 아름다운 증거가 됐다.

 

 

99. 최 비르지타

1801년 신유박해 이전에 입교해 남편 유씨와 함께 신앙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편이 임종하자 그는 오빠(최해성의 부친)가 살던 서지 교우촌으로 와서 정착했다. 그가 체포된 것은 1839년 9월의 일로, 원주 감옥에 갇힌 조카 최해성을 보러 간 게 빌미가 됐다…

원주 영장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가 하느님을 배반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는 그를 감옥에 가둬 두고 굶어 죽게 내버려뒀지만, 4개월이나 버티자 다시 명령을 내려 교살시켰다. 목에 차고 있던 칼을 조여 죽이는 방법을 동원했다고 한다. 그의 나이 56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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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최해성 요한 

1801년 신유박해 때 조부가 다락골에 유배되면서 온 가족이 조부를 따라 살게 됐다. 어려서부터 교리를 배우면서 성장한 그는 온순하고도 정직한 성품을 보였으며, 훗날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하고자 원주 서지(현 강원 원주시 부론면 서지길 일대)로 이주해 작은 교우촌을 이뤘다. 가난하게 살았지만, 자신보다 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자선을 잊지 않았고, 순교 원의를 드러냈다. … 체포돼 무려 21차례에 이르는 문초와 형벌을 받아야 했다. ‘다리뼈 두 대가 부러져 두세 치 되는 뼛조각이 두 개나 땅에 떨어지고 몸에 더는 몽둥이를 댈 곳이 없을’(다블뤼 주교,「조선 주요 순교자 약전」) 만큼 고통을 받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에 올라가시는 모습을 영혼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신앙을 지켰다고 한다. 그의 나이 29세였다.

 

 

38. 최인철 이냐시오

한양의 역관 집안에서 출생. 순교한 최인길 마티아의 동생. 일찍이 형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한 최인철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791년 신해박해 때 형과 함께 체포되어 형조로 끌려갔습니다. 그때 형조에는 이미 여러 동료들이 끌려와 있었는데 최인철은 동료들과 함께 협박과 회유, 형벌을 번갈아 받아야 했습니다… 포도청에서 신문을 받던 사람이 “사학의 괴수로 서울에는 최인길, 최창현, 최필공, 최인철이 있고 지방에는 윤유일과 이존창이 있다.”고 진술할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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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최창현 요한

한양의 역관 집안에서 출생. 순교한 최인길 마티아가 비록 그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집안 아저씨뻘이 된다.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직후에 교리를 배워 입교한 최 요한은 곧바로 뛰어난 자질을 발휘하였다. 글을 잘 알았던 그는 한문으로 된 교회 서적을 조선말로 번역하는 데 열중하였다. 이때 그가 번역한 책들은 한문을 모르는 신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평온한 마음과 조심스러운 행동을 지녔으며, 모든 일을 부지런하면서도 공정하게 처리하였다… 여러 차례 혹독한 형벌을 받았는데, 형벌을 받으면서 용감하게 신앙을 고백하였다. ‘자신이 천주교의 우두머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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