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4월 7일(성주간 화요일) 배반자들에게 희망을

4월 7일(성주간 화요일) 배반자들에게 희망을

 

잘 모르거나 싫어하는 사람과 하는 식사는 참 불편하다. 함께 먹는 건 최소한 적대감은 없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이미 당신을 팔아넘기기로 작정한 유다와 세 번이나 당신을 모른다고 부인할 베드로와 함께 축제 만찬을 드셨다. 유다나 베드로나 겉모양만 다르지 배반에는 매한가지다. 그렇게 보면 요한을 제외한 다른 아홉 제자도 다 마찬가지다.

 

예수님은 그걸 어떻게 아셨을지 의아해할 필요 없다. 그런 것을 아는 데 굳이 당신의 신적인 능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되셨을 거다. 우리도 가족과 동료들의 행동을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다.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않으니까. 더 많이 사랑하면 더 많이 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으니 그들을 다 아셨을 거다.

 

예수님은 배반자들과 함께 축제 만찬을 드셨다. 친교의 자리가 배반이 드러나는 자리가 되었다. 배반이라고 단죄하는 게 영 마음에 걸린다. 나도 다르지 않았을 것 같고, 지금도 그러고 있으니까. 예수님은 그들이 그럴 줄 아셨는데도 막상 그게 현실로 드러나니까 마음이 산란하셨던 것 같다(요한 13,21). 하지만 그걸 드러내시니, 아니 본래 당신의 희망은 그들의 회개가 아니라 당신을 죄의 세상으로 보내신 아버지 하느님이고, 그분을 영광스럽게 하는 게 당신의 사명임을 재확인하시니(요한 13,31-32) 마음의 평화를 되찾으시고 그들에 대한 사랑도 제자리를 찾았을 것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알아간다. 그래서 모를 때는 그게 옳은 줄 알아 편했지만, 그게 아닌 줄 아니 불편해하면서 그렇게 하고, 더 알게 되면 갈등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괴로워한다. 아주 오랫동안 몸에 밴 자연스러운 행동을 거스르는 중이다. 제멋대로 살지 않고 하느님을 따르려고 애쓰는 중이다. 그래서 갈등하는 인간은 아름답다고 하나보다. 예수님도 번민하고 갈등하셨다. 그게 나의 그것과 질적으로 다른 것이겠고 피땀을 흘릴 정도는 아니지만 매번 막히게 한다. 죄인들과 어울리시고 배반자들과 축제 만찬을 드신 예수님, 그분이 갈등하는 나와 함께 계신다. 그때 더 가까이 계신다. 

 

예수님, 주님은 죄가 뭔지 잘 모르시겠지만 그 유혹은 잘 아십니다. 당신은 이겨내셨지만 저는 그렇지 못함을 잘 아십니다. 주님은 뉘우치며 돌아서는 저희를 언제나 용서하시고 위로하시고 격려하십니다. 베드로에게 일흔일곱 번 이상 용서하라고 명령하셨으니 저에게는 끝까지 그러시리라고 믿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군중들과 권력가들이 십자가에 매달아 조롱하던 이가 누구신지 잘 아셨습니다. 그런 고통을 겪으셨으니 갈등하는 저를 위로해 주시고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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