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나해 2월 17일(재의 수요일) 은혜로운 시간(+MP3)

나해 2월 17일(재의 수요일) 은혜로운

 

사순기를 작한다. 늘 그랬듯이 반갑지는 않지만 이번에도 은혜로운 간이 될 것이다. 극기와 보속으로 작은 결심을 한다. 작심삼일, 매번 실패했지만, 그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또다 결심한다. 그런 결심들을 써서 머리띠를 하거나 벽에 붙여 두지는 않는다. 뭐 대단한 거라고 나팔을 불겠나. 나의 의지력을 키우기 위함도 아니다. 하느님과 더욱더 친해지려는 것이다.

 

머리에 재를 받으며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십오.’ 그리고 ‘당신은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십오.’라는 권고를 듣는다. 늘 듣던 말씀이고,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도 더 진지해지고 숙연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지금 나의 모습과 마주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느님과 멀어져 있고, 얼마 후면 내 몸은 한 줌의 재가 되어 먼지로 돌아간다는 것을 잊었다.

 

어느 날 공동체 식탁에서 예수님과 성경 말씀을 팔아 자기 배불리는 사이비 교주들 이야기가 나왔다. 한 형제가 말했다. ‘그 사람들 죽어 하느님 앞에 서면 얼마나 황당해할까? 그 모든 게 사실이었음을 알게 될 테니 말이야.’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돈벌이로 써먹었지만 우리는 끝까지 지켜야 할 계명이고 생명의 말씀이라고 믿고 따른다. 우리가 들은 이 모든 게 사실임을 알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 말씀을 듣지 않아 그들로 인해 땅은 저주를 받았다(창세 3,17). 거기서 나온 흙으로 만들어진 육체를 입고 있어서 그런지 알면서도 하느님 말씀을 잘 따르지 않는다. 죄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사라지질 않는다. 원죄의 상처 때문인지 아니면 미완성이라서 그런지 배우고 바라는 만큼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지 못한다. 하느님은 나를 바꾸어놓지 못하신다. 하지만 내가 원하면 즉 나를 도와주신다(2코린 6,2). 작은 결심을 지키려고 애쓰고 실패해도 또다 결심하면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체험한다. 보잘것없는 결심과 노력이 주는 선물이고, 사순기가 은혜로운 때인 이유다.

 

예수님, 이 은혜로운 기에 코로나로 많은 교우가 머리에 재를 얹지 못할뿐더러 성체를 모거나 고해성사도 못 봅니다. 이런 현실에 마음 아프겠지만 이런 와중에도 주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삶의 자리에서 계명을 지켜 주님의 절친이 되려는 이들로 위로받으신다고 믿습니다. 성당에 가지 못하고 사제 없이도 스스로 주님을 따를 수 있음을 알게 되는 은혜로운 간이 되게 도와주십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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