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11월 21일(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숨은 의도 (+mp3)

11월 21일(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숨은 의도

 

보답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게 선물이다. 좋아서 사랑해서 그냥 주는 것이다.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봉헌하는 그 마음이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봉헌이 아니라 청원의 대가이다. 차라리 이걸 드리는 만큼 간절하니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고 청하는 게 더 좋고 순수해 보인다.

 

성모님은 어렸을 때 이미 당신을 하느님께 봉헌하셨다고 전해진다. 그러니까 죽음을 각오하고 하느님의 제안을 받아들이실 수 있었다. 그분은 미래를 내다보는 신통력을 지닌 신적인 존재가 아니셨다. 어린 아들이 하는 말과 그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무슨 뜻인지 잘 알지 못해 곰곰이 생각하고 마음에 담아두셨다. 가브리엘 천사의 제안에 ‘예’라고 대답하신 건 당신 봉헌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성모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범이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게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성모님처럼 하면 된다는 뜻이다. 그러면 나의 꿈과 바람은? 그리고 내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의 복지는 어쩌고? 우리 하느님은 폭군이 아니다. 나의 꿈과 바람 따위는 무하고 당신 하고 싶은 대로 나를 이용하는 분이 아니다. 꿈도 바람도 말씀드리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당신의 간표와 방식에 맞춰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확신하는데, 하느님은 내가 바라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멋지게 이루어주신다. 내가 잊어버린 청원도 다 챙기신다. 나도 모르는 그 청원의 속내까지 아고 그대로 이루신다. 하느님께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은 뒤 한참 지나서야 그걸 알게 된다. 부끄럽고 죄송하고 감사하다.

 

이유 없는 말과 행동은 없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다 나름 이유가 있다. 표면적인 의식으로 사는 일상에서는 가려진 그 의도를 알아채지 못한다. 성찰, 명상, 기도가 양파껍질 벗기듯 자신의 의식에 깊은 곳에 숨어있는 그 의도를 보게 해준다. 때론 무의식 속에 있는 것까지도 그렇다. 실망스럽게도 그것들 대부분은 원초적이고 이기적이다. 사랑도 이기적으로 하는 게 사람이다. 선물이라고 주지만 뇌물이고, 봉헌이라고 하지만 청원인 것과 같다. 이런 것들을 알아가면서 부끄럽고 비참해지지만 그런 마음은 잠뿐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본래 그렇고, 그런 마음으로 계속 괴로워하면 교만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아채고 잠 부끄럽고 죄송스러워 한 후, 그 즉 내 뜻보다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고백하면 하느님은 아주 기뻐하실 거다. 우리는 이렇게 예수님의 형제, 자매, 어머니가 되어 간다(마태 12,50).

 

예수님, 생각이 아니라 제 존재 더 깊은 곳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행동으로 옮깁니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들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제가 저를 비운 그곳에 주님은 당신 말씀을 살며 놓아두는 것 같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봉헌의 뜻을 알아듣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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