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9일 십자가의 길, 생명의 길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박해를 예고하셨다. 당신이 먼저 박해를 받으셨으니 세상이 그분을 따르는 이들에게도 똑같이 대하는 것은 자명했다. 박해와 십자가는 세상이 하느님과 그의 자녀들을 대하는 방식의 표지가 됐다.
예수님은 박해를 예고하셨지만 그와 동시에 구원과 생명을 약속하셨다. 그것은 가족관계는 물론이고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하고 좋은 것이었다.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6-19).”
박해를 받던 교우들은 이 말씀을 듣고 큰 위안과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반대로 세상은 혹독한 그 추종자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 정반대였다. 고문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었던 그것은 무엇이었고, 그들을 위로하고 초인적으로 인내하게 해주었던 그분은 어떤 분이셨나?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지만 머리가 통째로 잘려나가지 않았던가?
예수님이 약속하셨던 생명과 행복은 분명 이 세상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깊이 생각해도 도무지 그것을 알 수가 없다. 그 생명은 묵상과 기도가 아니라 실천 속에 있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오늘도 여전히 박해를 받는다. 그런데 이제 교회는 더 이상 박해를 받지 않는다. 그렇다고 세상의 폭력과 박해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나? 박해와 십자가는 결코 반갑지 않지만, 생명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은 두렵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생명의 길로, 십자가의 길로 인도해주소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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