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8월 30일 보답과 인정을 바라지 않음

8월 30일 보답과 인정을 바라지 않음

 

“하늘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마태 25,1).” 열 처녀의 비유로 알려진 하늘나라의 이 비유말씀은 뜻은 이해하겠지만 마음이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다. 요즘은 신부가 아니라 신랑이 신부를 기다리는데 그것도 예식장에서 고작 1-2분 정도이다. 그리고 버스든 사람이든 언제 약속장소에 도착할지 금방 알아볼 수 있고 거의 약속시간에 도착하니 이렇게 편리해지기 전 약속만 믿고 그 자리에서 마냥 기다리던 마음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의 실제생활은 그렇지만 하느님을 만남은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이다. 그날이 언제일지 아무도 모른다. 천사도 예수님도 모르시고 오직 아버지 하느님만 알고 계신다(마르 13,32). 그때까지 어두운 에 불을 비춰 신랑의 얼굴을 알아볼 그때까지 등불만이 아니라 그 불빛이 꺼지지 않게 할 기름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아무도 볼 수 없는 마음의 골방에서 주님을 만나고(6,6), 남모르게 선행과 희생(마태 6,3)을 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아무런 보답과 인정을 바라지 않고 그것들을 지속해나감은 훨씬 더 어렵다. 전화기로 예수님께 여쭤볼 수도 없다. 지금 잘 하고 있는 건지, 나의 보물창고에는 보물들이 잘 쌓이고 있는지, 혹시 좀과 녹이 쓸거나 도둑이 들지는 않았는지 도무지 확인해볼 길이 없다.

 

주님의 말씀을 믿음은 이런 도전과 시련을 받는다. 이런 것들을 피할 방법을 찾지만 역설적으로 그 자체가 내가 잘 찾아가고 있고 잘 준비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소화 데레사 성인은 생의 마지막 시간에 주님이 믿어지지 않았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 온 시간들이 헛되었다는 유혹에 시달렸다고 한다. 사실 예수님도 광야에서 겪으셨던 일 그리고 그 동산과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들을 보면 단지 그때뿐 아니라 공생활 내내 그런 유혹과 시련을 계속 받으셨을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사람이 아니다.

 

하늘나라는 그 슬기로운 처녀들이 신랑과 함께 들어 간 그곳이 아니라, 기름을 준비해서 등불을 꺼뜨리지 않았던 그 슬기로운 처녀들이었다. 그날이 오면 시간은 멈추고 공간은 사라진다. 등불도 기름도 필요 없게 된다. 믿고 살든 엉망으로 살든 그날이 와도 우리는 죽지 않는다. 그 때가 되면 그 만남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인 이들이 있고 제발 죽여 달라고 애원하는 이들로 나뉜다. 그 기쁨을 얻기 위해 받는 시련이 바로 보답과 인정을 바라지 않는 것이고 그렇게 나의 믿음은 굳건해지고 깊어진다. 그리고 그 믿음은 점점 현실이 되어간다.

 

예수님, 늘 기름이 간당간당합니다. 괜한 땀과 시간만 낭비한 것 같고 바보가 된 것 같아 주님의 약속을 의심합니다. 그 때에도 주님은 침묵하시니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 등불의 기름은 이웃에게 나눌 수도 빌릴 수도 없음은 믿음은 오직 저만의 몫임을 되새깁니다. 주님은 도와주시겠지만 억지로 믿게 하실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믿음의 길로 인도해주시고 지칠 때 쉬게 하시고 의심이 들 때 위로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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