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4월 19일(성주간 금요일) 암흑

4월 19일(성주간 금요일) 암흑

 

오랜 전 영화관에서는 필름이 끊어지거나 정전으로 상영되던 영화화면이 갑자가 사라지고 극장 내부가 암흑이 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잘 상영되던 영화가 사라졌다. 오늘이 그런 간이다. 예수님의 추종자는 점점 많아지고 그분을 구세주 메아로 여기는 사람들도 생겨났는데, 이제 지난 몇 년 동안 스승님을 따라다니며 고생한 보람과 보답이 받을 간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그분은 허무하게 돌아가셨다. 그분은 우리가 상상하던 그런 구세주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만한 모습도 없었다(이사 53,2).”

 

아 영화상연이 중단됐다. 아니 처음부터 그런 영화가 아니었는데, 그런 기대를 갖고 그 영화관 안에 앉아 있었다. 영화관이 암흑이 된 것처럼 우리들의 기대도 상상도 생각도 그렇게 됐다.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두려움뿐이다.

 

어떻게 그리고 왜 하느님이 죽는단 말인가? 예수님은 좋은 일만 하셨고, 재판장은 모두 거짓과 모함뿐인데 그분은 그들의 거짓을 고발하거나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않으신다.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암흑이다. 그분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죽음이 없으면 부활도, 암흑이 없으면 빛도 없다. 하느님의 죽음을 설명도 이해도 하지 말자. 영화상영이 중단된 극장의 암흑처럼 내 생각도 기대도 상상도 바람도 모두 중단하자. 사실 나는 하느님을 알 수 없다. 내가 하느님에 대해 내놓은 수많은 말들은 그분의 극히 작은 부분이다. 모래사장의 모래 알갱이 몇 개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오늘과 내일은 그냥 암흑 속에 있자. 하느님 없이 사는 게 어떤지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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