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축복받은 귀와 눈(연중 13주일, 7월 2일)

축복받은 귀와 눈(연중 13주일, 7월 2)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입원해계실 때에 일입니다마침 안식년을 보내는 중이어서 마음껏 어머니 병간호를 할 수 있었습니다뒤돌아보면 참으로 하느님께 고맙고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병든 어머니 곁을 지킬 수 있었던 것 이외에도 저의 신원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어머니 곁을 지키는 것 말고는 사실상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는 가난했습니다청빈 서원으로 제 몸뚱이는 하느님이 책임져주시지만 어머니에게는 아무 것도 드릴 것이 없었습니다사제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세상사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사제는 교회 안에서만 그리고 하느님의 일을 할 때에만 권위가 있음을 알았습니다그 권위는 세속적인 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그 상황에서 저는 그저 가난한 한 아저씨였습니다.

 

그 후 남은 안식년 동안 수도사제로서의 삶을 뒤돌아봤습니다저는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많은 말과 권고를 쏟아내고 있었습니다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였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것에 반대하거나 비난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했습니다아마 사람들이 제 설교와 강의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고 해석했었나 봅니다아니 그러고 싶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어머니를 떠나보내 드린 뒤에짧으나마 한 아저씨로서 살았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수도자사제라는 직업신원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했습니다그들은 한 마디로 하느님의 사람들입니다그들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사람들은 그들의 설교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 듣습니다그들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겼기에 하느님이 없으면 그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가정도 꾸리지 않으니 생명을 만들고 키우지도 못하고생산적인 활동을 하지도 않는 그냥 한 사람이고어쩌면 사회에서 별 쓸모없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수도원에서신학교에서 그들이 배운 지식들은 세상살이에서 아무 소용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그러니 그들에게 하느님이 없으면 그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우가 아닌 분들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제와 수도자에게 잘 대해줍니다처음에는 이런 대우가 어색하고 불편해서 그런 자리를 피하거나 도망 다녔습니다그런데그분들이 그러는 것이 저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고 싶은 마음 때문에하느님께 잘 해드리고 싶은데 실제적으로 그럴 수 없어서 그 대신에 하느님의 사람이라고 불리는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대해주는 것임을 알았습니다다시 말해 제가 아니라 하느님께 잘 해드리는 것이었습니다그 이후에는 그런 일이 생기면 그들의 봉사와 사랑을 하느님은 기꺼운 마음으로 받으시리라는 믿음으로 감사하게 잘 받습니다사실 저와 같은 사람들은 어차피 하느님 덕분에 사는 사람이고게다가 하느님은 우리의 생활을 책임지실 의무가 있으시니 감사하며 받습니다.



 

가족을 떠나고자신의 복지를 염려하지도 않고자녀들도 없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상은 하느님 자신입니다그들은 그 외에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입니다마음이 갈라져하느님 이외에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길 때 그들은 불행해집니다그들은 부모형제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세상을 떠났지만 도망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집니다그렇지만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내던지면 하느님이 당신의 생명을 채워주실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마태 10,33-39). 그렇게 하느님은 몸소 그들의 상이 되어주십니다그런데 예수님께서 설교하실 때 사람들은 그분의 어머니를 부러워하였지만예수님은 오히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대답하셨습니다(루카 11,27-28). 그렇습니다신원 그 자체가 그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예수님이성모님이 그리고 그 제자들이 행복했던 이유입니다연약한 한 사람의 말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허술하기 짝이 없는 교회를 하느님의 것이라고 신뢰하는 그 믿음이 그를 행복하게 합니다그리고 보잘 것 없는 작은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하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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