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8월 18일 부모

818일 부모

 

오래 전에 자신의 부부생활의 어려움을 털어 놓았던 분의 말이 기억난다. 그의 말이 모두가 사실이라면 이혼하세요.’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사제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그분이 말했다. ‘그래도 성사로 하느님이 맺어주신 관계인데,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다른 무엇이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더 참고 기다려야 하겠지요?’ 그런 생각을 했던 자신이 부끄러워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하느님은 두 가지 길을 제시하셨다. 하나는 혼인하여 가정을 꾸미고 사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께 삶을 온전히 봉헌하는 길이다. 다른 길은 없다. 두 길이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에 대한 두 가지 표현이다. 그 하나는 부모가 되는 길이다. 그래서 교회도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혼자 살게 된 이들도 또 다른 형태의 부모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하는 것이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다. 위로 올라가는 치사랑은 없다. 부모가 되지 않으면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없고, 하느님의 사랑은 더욱 알기 어렵다. 하느님은 우리를 빚어 만드시고 키우시고 품어주시는 참 부모이시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좋은 부모, 참 부모가 되어가는 긴 여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수도자는 자식이 없어 부모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만년 어린이, 미성숙한 사람일 수밖에 없는 걸까?

 

세월호 사건 때 물 속에 있는 자식의 소식을 기다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의 그 일그러진 얼굴을 보면서 그런 상태는 이해하지만 공감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았다. 부모가 똑같은 것을 3번 물으면 자식은 화를 내지만, 똑같은 것을 23번 물어도 그런 자식이 사랑스럽고 기뻐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라고 어떤 교수님이 말했다. 그 말에 딱 반만 공감할 수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마지막 대화가 짜증이었음에 꽤 오랜 시간 죄책감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십 번 똑같은 묻는데 어떻게 짜증나지 않고 오히려 기쁘고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도저히 알 수 없다. 그러면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전한다고 외치는 나의 모습에 자괴감이 든다.

 

부모가 되는 길은 위대한 길이다. 세상에서 가정을 꾸미고 자식을 낳아 길러내는 일만큼 위대한 일은 없다. 그 전에 이것을 알았더라면 지금 여기에 있지 않았을 것 같다. 수도자, 성직자의 길이 가장 좋아보이게 눈을 멀게 하셨나 보다. 스스로 고자가 되는 것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현실은 전혀 아니다(마태 19,12). 그래서일까, 혼인성소가 훨씬 더 좋아 보인다. 하지만 혼인이 성사로 맺어진 것이고, 나의 서원과 서품 또한 그러하다. 하느님은 내가 좋은 부모가 되기를 바라실 것이다. 좋아하지 않는 이들을 사랑하려고 애쓰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가 어려움에 처해 있으면 기꺼이 그에게 좋은 친구, 이웃이 되어주려고 용기를 낸다. 그러다보면 나도 좋은 부모가 될 수 있겠지. 그리고 더 이상 다른 성소를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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