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5월 6일 예수님의 손가락

5월 6일 예수님의 손가락

 

뭘 해도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듣는다. 동료들과 어울려 먹고 마셔도 그전처럼 즐겁고 신나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그렇게 기쁘지 않고, 일, 취미생활 심지어 봉사활동도 그것들이 주는 만족감이 그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시들해졌기 때문일까? 아니다. 다시 잘 생각해보면 사실 예전에도 그랬다. 먹고 마심도 친구도 일도 봉사도 사랑도 나를 다 채워주지 못했다.

 

그러면 신앙은 나를 다 채워줬나? 그것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것은 물론 하느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나의 신앙이 부족해서였을 거다. 아니 나의 신앙이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미사에 참례하고 피정을 가고 성지순례를 다녀와도 언제나 그 자리인 것은 하느님보다는 여기 있는 자기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 일거다. 한 마디로 여기서 나의 만족을 위해 믿기 때문이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그렇게 애써 당신을 찾아 온 이들에게 예수님은 그들의 열심과 열정에 찬 물을 끼얹으시는 듯이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예수님의 손가락만 보았던 것이다. 그것이 가리키는 것 혹은 그곳을 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27).”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은 하느님이 보내신 분, 예수님을 믿음이다(요한 6,29). 그런데 예수님은 가난을 없애지도 못하셨고, 부정부패를 몰아내거나 권력자들을 처단하지도 못하셨다. 그분은 세상을 바꾸지 못하셨다. 예수님이 세상일에 관심이 없거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사명은 여기를 넘어선 곳의 삶을 가르치시고 직접 보여주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먹고 마셔도 친구와 어울려 놀아도 일과 취미생활에 열중해도 봉사를 해도 채워지지 않음은 이상할 것이 없다. 처음부터 그 갈증은 여기에서 해소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들이 주는 기쁨과 만족, 하느님의 현존 체험들이 비록 일시적이기는 해도 그것들은 여기를 넘어선 저기 어딘가를 내게 가리키고 있다, 예수님의 손가락처럼. 우정과 사랑,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은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가리킨다. 세상의 모든 지표들이 어두워도 믿음이 사라지지 않음은 영원하신 하느님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믿음은 죽음도 빼앗아갈 수 없는 기쁨, 영원한 기쁨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오늘도 거기로 가는 나의 영적인 여행길의 진정한 동반자로 함께 걷고 계심을 믿는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저기로 가는 저의 발걸음이 뒤뚱거리지 않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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