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7월 5일(성 김대건 안드레아) 순수한 믿음

7월 5일(성 김대건 안드레아) 순수한 믿음

 

새벽하늘에 별똥별이 지나갔다. 그 순간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데 그것은 별똥별이 어떤 힘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 짧은 순간에도 말할 수 있을 만큼 그 바람이 간절했다는 뜻일 거다. 그런데 아무런 소원도 빌지 못했다. 남북화해와 일치를 위한 바람도 그다지 간절하지 못했나 보다.

 

김대건 신부님은 이 땅에 성직자들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려고 하다가 붙잡히셨다. 그의 행동은 분명 반국가적인 행위로 비쳐질 수 있었다. 아마 정부고위관료들은 그가 그렇지 않음을 알고 있었고 그를 회유해서 그의 재능을 나랏일 하는데 쓰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부님의 뜻은 너무 확고해서 마치 순교하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 같다. 신부님은 자신이 언젠가는 그런 일을 당할 것을 알고 계셨다고 학자들은 추정한다. 단지 예상보다 그 시간이 빨랐을 뿐이었다. 신부님은 회유와 문초에 이렇게 대답하셨다. “한 번 태어나고 한 번 죽는 일은 사람으로서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천주를 위해 죽게 되었으니 이는 오히려 제가 바라던 일입니다. 오늘 묻고 내일 묻는다 해도 응당 이와 같이 대답할 따름입니다.(『일성록』, 1846년 5월 26일)” 25세 청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말로만 배교한다고 하고 마음으로는 주님을 섬길 수 있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게다가 나라에서 신부님을 원하니 나랏일을 해주는 척하면서 천주교를 조금씩 알리고 몰래 교우들도 도울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이론과 상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믿음은 본시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순교를 각오함을 넘어 바라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실천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순교가 믿음의 목적은 아니다. 그것은 종교를 위한 희생이 아니라 진리의 증언이다. 일부 극단적인 근본주의자들이 폭력적으로 자신의 믿음을 증언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 선조들은 믿는 대로 살려고 고향을 등지고 척박한 곳으로 들어가 숨어 지냈다. 거기서 새로운 친구와 가족들을 만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서로 도우며 살았다. 그들은 비록 삶은 고단했지만 그전과는 완전히 전혀 다른 그리고 그들이 꿈꾸었던 대로 살 수 있어 행복했을 것이다. 그런 곳이 교우촌이다. 교회는 순종으로 만들어진 공동체라는 강력한 조직력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은 오직 교우를 보호하고 신앙을 보존하는 데에만 사용되었다. 주님이 사셨던 대로 살았다. 믿음과 삶이 일치한다.

 

김 신부님과 선조들이 전해준 것이 바로 이것이다. 믿는 대로 사는 것이다. 그 길에는 도전과 역경이 기다리고 있음은 당연하다. 주님이 예고하셨고 당신 먼저 그러셨다. 하지만 주님은 물론 신부님을 비롯해 주님을 따라 살던 모든 이들은 행복했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았다면 배교했을 것이다. 배교행위는 지극히 간단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럴 수 없었다. 어떤 고통을 당할지 알면서도 그럴 수 없었다. 알면서도 버릴 수 없는 게 사랑이고 믿음이 아닐까? 그들 안에 하느님이 없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25세 유능한 청년이 그렇게 용맹하고 담대하게 증언할 수 있었던 이유일 거다. 하느님!

 

주님, 이제는 그런 혹독한 박해가 없이 자유롭게 믿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는 대로 사는 것은 여전히 박해를 받습니다. 성공에 대한 유혹과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교만함이 주님의 계명대로 사는 것을 방해하고 보이지 않게 박해합니다. 저희의 믿음을 더욱 순수하게 만들어 주소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에게 하셨던 것처럼 저희를 보호하여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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