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9월 10일 껄끄러운 동거 (+ mp3)

9월 10일 껄끄러운 동거

 

부와 성공은 우리 신앙과 별 관계가 없다. 기도하는 만큼 성공하고 부자가 되지 않는다. 똑똑하고 능력 있고 거기에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거나 운까지 좋으면 성공하고 부자가 되기 쉽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자신을 버리고 매일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이 사신 것처럼 산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고, 예수님이 사람들을 대하셨던 것처럼 사람들을 대한다. 그래서 원수까지 사랑하고 마침내 친구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예수님은 완성된 인간, 완전한 인간의 모범이다. 하느님이 진흙 인형에 당신 숨을 불어넣으실 때 꿈꾸셨던 인간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나에게 바라는 나라고 정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말한다. 왜냐하면 오늘 예수님은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라(루카 6,27.35)”고 연거푸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사랑은 참으로 큰 도전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해주고, 잘 대해주는 사람을 섬기고,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게 사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건 누구나 다 하는데 굳이 시간 내서 기도하고 십자가가 어쩌고저쩌고하며 예수님의 제자가 될 필요가 없다.

 

거창하게 원수를 사랑하겠노라고 결심할 것이 아니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잘 해주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하면 눈치 보거나 쑥스러워 말고 즉각적으로 도와주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게 악행이거나 위험한 일이 아니면 참고,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미소로 말을 건넨다. 사실 원수라고 부를 사람이 없다. 있다면 그건 내 안에 있는 그놈이다. 그렇게 하려 하면 길을 가로막고 그러면 손해를 보고 바보로 보일 거라고 경고하는 그 녀석이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참 오랫동안 내 안에서 살고 있는 놈이다. 그렇게 오래 같이 살았어도 조금도 정이 들지 않으니 그놈이 바로 내 원수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을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려야 하고, 가족은 물론이고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을 것이다(루카 14,26). 그 원수는 내가 죽어야 내 안에서 나갈 것이니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다. 보기 싫고 불편해도 함께 살아야 한다. 껄끄러운 동거다. 마치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에게 잘 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남이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주고, 하느님이 나를 대하시는 대로 이웃을 대한다. 힘들고 어렵지만 그렇게 나의 되는 커지고 그 되에 누르고 흔들어서 가득 담아주실 것이다(루카 6,38).

 

예수님, 주님은 갖고 계신 걸 다 주고 싶어 하시지만 다 받지 못합니다. 제 그릇이 작습니다. 그래도 작년보다 좀 커졌고 내년에는 조금 더 커질 겁니다. 생긴 대로 사는 것은 주님 뜻이 아닙니다. 매일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가고 매일 조금씩 변해야 합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아드님의 바람이 제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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