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10월 22일 회개는 평화의 시작(+ mp3)

10월 22일 회개는 평화의 시작

 

어머니는 내가 수도원에 가는 게 탐탁지 않으셨다. 의사가 되고 좋은 가정을 꾸미고 살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수도 생활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흘러 뒤돌아보니 매우 이기적인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봉양과 자녀 양육이라는 천부적인 의무를 너무 쉽게 떠맡기도 저 좋은 걸 찾아 떠나온 것 같았다. 그런 생각 때문에 한때는 부끄럽고 죄스러워 괴로웠다. 그러던 중 어머니는 한 달에 한두 번 봉사자로서 이곳에 와서 기도꾼들에게 밥을 해먹이셨다. 어머니는 여기서 자식뻘 되는 많은 사람과 어울리고 친구도 사귀셨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수도원 바닥을 걸레로 닦고 계셨다. 노모가 무릎으로 기면서 청소하는 걸 보고 좋아할 아들이 어디 있겠나. 하시지 말라고 했더니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이렇게 더러운데 어떻게 그냥 두냐고 역정을 내셨다. 바로 그 순간 나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내렸다. 숨이 막히는 것처럼 힘들었지만 그때부터 나는 그분을 내 어머니 이전에 그렇게 살아 온 한 여인으로 보게 되었다. 회개하게 됐다. 나는 예전에 그분이 날마다 마루며 방바닥이며 집 안 구석구석을 걸레로 닦는 모습을 보았다. 그분이 하루를 어떻게 사는지 알았다. 그런 작은 다툼이 있고 난 뒤부터는 그분을 위해서 청소할 부분을 남겨 두었다. 엄마였으면 속상했겠지만, 아주 잘 아는 할머니니까 그리고 나를 낳아 젖을 먹여 키운 정말 고마운 분이니까 나는 그분에게 정말 잘해드릴 수 있었다. 그분을 위해서 그분을 사랑할 수 있게 됐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닮았고 형제들과 비슷하지만 나는 하느님의 자녀, 그리스도인이다. 내게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그분 한 분뿐이시고, 나의 유일한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마태 23,9-10). 이런 고백은 가족과의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더 잘 섬기고 사랑하게 한다. 하느님과 나의 관계는 가족관계보다 우선한다. 아니 하느님 안에서 그들은 모두 나의 형제자매다. 가족과 형제의 사랑도 복음으로 정화되어야 한다.

 

엄마 없는 집에서 라면을 끓이다 불이 나서 많이 다친 어린 형제 중 동생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참 마음 아프다. 세월호 때처럼 미안하다. 내 자식만 돌보는 게 아니라 어른들이 아이들을 돌보고, 부모만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힘없는 노인들을 보살피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약자들이 편하게 생활하는 곳이기를 바란다. 제도나 기관 설립 이전에 사회구성원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바꾸고 실천해야 한다. 원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따라 하늘에 계신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사람들이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주님, 평화는 개인의 회개에서 시작합니다. 제가 돌아설 곳은 주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이고 섬기는 삶입니다. 쓸데없는 의심과 미래에 대한 걱정을 주님 사랑의 불로 태워 주소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사랑하고 섬기는 기쁨으로 육신의 수고로움을 녹이는 법을 가르쳐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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