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일(성 스콜라스티카 기념일) 생명나무 십자가
식탁에서 사전 연명치료 의향서 이야기를 했다. 무의미한 생명 연장은 말 그대로 의미가 없다.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하자, 한 형제가 걱정하지 말라고, 하느님은 다 용서하신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하느님은 언제든지 나를 맞을 수 있지만 나는 아니다. 그렇다고 매일 죽는 날을 기다리며 살 수는 없다. 그래서 늘 기도한다, 아무 준비 없이 그날을 맞지 않게 해달라고, 그리고 그날이 가까우면 알려주시라고. 그전까지는 내가 받은 사명을 열심히 신나게 충실히 다한다. 매일 나를 버리고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
그 형제의 말이 믿기 어렵지만 믿어야 하고 그것이 우리 희망의 근거다. 그래서 앞만 보고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믿는다고 모든 일이 잘되지 않는다. 세상은 참 복잡하다. 왜 그럴까? 아마 선악과를 따먹은 첫 인간의 유전자가 내 안에 그리고 우리 모두 안에 있기 때문일 것 같다. 인간은 하느님을 닮았다. 이는 인간은 하느님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은 함께 사는 다른 피조물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야 잘 살 수 있다.
하느님 말씀은 복잡하거나 난해하지 않다. 서로 사랑하고 남이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주면 된다. 남을 심판하지 않아도 된다. 그건 하느님이 하신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존중과 사랑으로 함부로 넘어가지 말아야 할 경계가 있듯이, 하느님만의 영역이 엄연히 있다. 당신이 심혈을 기울여 빚어 만드셨는데 인간을 모르실 리 없다. 거기에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니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게 우리에게는 이롭다.
선악과나무 옆에는 생명나무도 있었는데(창세 2,9), 그들은 선악과만 따먹었다. 그것은 그 나무 열매가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고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기(창세 3,6)’ 때문이라고 했다. 아마 생명나무 열매는 십자가처럼 못생기고 맛없어 보였던 것 같다. 내 안에도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가 함께 있다. 왜 하와가 유혹을 받았는지 알 것 같다. 하느님처럼 된다는 건 정말 유혹적이다. 그 끌림이 유혹인 것은 내가 아직 하느님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십자가 위에서 외치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악과나무는 하느님 것이니 손대지 말자. 그 근처에도 가지 말자. 못생기고 맛없어 보여도 생명나무 열매를 먹자. 입에는 쓰겠지만 속은 든든할 거다.
예수님, 사람을 더럽히는 것들이 저희 마음에서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것이겠죠. 주님도 마음대로 하지 않으시고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그러니 저는 두말할 필요 없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언제나 제 마음을 살펴 조심해서 주님의 계명을 어기지 않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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