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나해 4월 27일 결심(+ MP3)

4월 27일 결심

 

점잖게 운전하는 편이다. 그런데 피곤하면 속도를 내고 답답하게 가는 앞차를 보면 짜증 내며 비키라고 신호를 보낼 때도 있다. 그렇게 집에 오면 언제나 후회하고 부끄러워한다. 그런데도 똑같은 상황이면 또 그런다.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세상 안에서 산다. 우리가 받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빛을 가정, 마을, 직장, 거리 한가운데에서 비춘다. 신앙은 윤리적인 삶으로 드러난다. 때로는 세상이 말하는 윤리와 교회가 말하는 윤리가 충돌하기도 한다. 교회는 하늘나라 시민이 사는 법을 말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태어나고 철저하게 세상 교육을 받은 사람이 세례를 받는 즉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지 않는다. 수도자도 사제도 다 마찬가지다. 수도복을 입고 제의를 입고 복음을 전한다고 그가 천사가 되지 않는다. 세례로 원죄는 씻었지만 죄로 기울어지는 성향은 그대로 남아있다. 듣기 거북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우리는 뼛속까지 죄인이다. 그렇지 않다면 구세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셨으며, 오늘도 성찬례 안에서 또 그렇게 하신다는 믿음은 모두 헛되다. 그러면 하느님은 거짓말쟁이고(1요한 1,10), 교회는 사기꾼 집단이 되어버린다.

 

거룩해서 윤리적으로 사는 게 아니라 윤리적으로 살아서 거룩해지는 것 같다. 그렇게 많이 기도하고 매일 성체를 받아 모시는 데도 거룩해지지 않는 것은 결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청하기만 하고 결심은 하지 않으니 바뀌지 않는다. 그러고는 하느님께 그 책임을 전가한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주님은 동행해 주실 수 없고, 결심하지 않으면 도와주실 수 없다.

 

주님, 입으로는 주님 계명을 지키겠다고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제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 충돌과 갈등은 나쁘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제 안 깊숙한 곳, 저도 잘 몰랐던 그곳까지 내려왔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또 같은 결심을 합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앞둔 어린 아드님을 안전하게 안고 계십니다. 제 온몸에 배어있는 자애심을 버리고 주님 계명을 지키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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