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나해 7월 5일(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나의 신앙이 가리키는 곳(+MP3)

나해 7월 5일(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나의 신앙이 가리키는 곳

교회는 올해 대림시기 시작 전날까지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을 지낸다. 순교자 축일을 지내거나 순교자 영성을 말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지금 여기서 순교성인들의 마음으로 사는 거다. 성인들의 희생은 교회 수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증언이다. 그대로 살지 않으면 진리가 아니고 진리에 따라 사는 것은 피조물의 도리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갈라 5,6).”

“당신이 천주교인이오?” 이 희년의 주제다. 이는 신부님이 옥중 취조 때 받으셨던 질문이다. 이는 오늘 여기 우리 각자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오늘 천주교인이 된다는 것과 200여 년 전에 그렇게 결심하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달랐다. 세례성사의 내용 그대로 정말로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가톨릭교회는 박해 속에서 신앙을 지키고 전해주고 성장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예고하신 그대로였고, 그 이전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도 그랬다. 신앙대로, 진리대로 살면 필연적으로 박해를 받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조선 사회에서는 시대를 앞선 교육을 받은 청년이었다. 나라에서 그의 재능을 알고 회유하려 했다. 그런 과정에서 세계 지리와 관련된 일과 번역 등 실제로 정부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렇다고 신부님의 마음이 바뀐 게 아니었다. 아마 신부님도 조선이 눈을 떠서 당신이 두루 보고 배우셨던 넓은 세상을 보게 되기를 바라셨을 것 같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신앙이 가리키고 있는 곳도 보게 되기를 바라셨을 거다.

그 당시 천주교인이 되는 것은 사형까지 당할 중대한 위법행위였다. 오늘은 그와 똑같은 신앙을 지니고 거기에 사제가 돼도 괜찮다. 신앙은 늘 같은 것을 말하고 한 곳을 가리키는데 세상은 이랬다저랬다 한다. 시간이 지난 뒤에 진실이 밝혀지고 무죄로 선언되고 늦었지만 복권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예수님도, 순교자도, 김대건 신부님의 삶도 그랬다. 어쩌면 나도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세상이 어떻게 평가하든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나의 관심은 하느님 앞에 서는 그 날이다. 나의 신앙은 마음의 위로나 끼리끼리 몰려다니는 친목을 가리키지 않는다. 수많은 선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고 전해주었다. 그것은 진리, 하늘나라, 영원한 생명, 하느님이다. 나도 이것을 지키고 전해줄 거다.

예수님, 플라스틱과 종이박스의 스티커를 귀찮아도 끝까지 깨끗하게 잘 떼어냅니다. 이것이 자원 재활용과 자연보호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르고 때론 괜한 수고한다는 유혹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작은 실천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실용적인지는 몰라도 분명히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린다고 믿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저 너머에 있는 세상을 늘 바라보며 살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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