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나해 10월 27일 부르심(+MP3)

나해 10월 27일 부르심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루카 13,24).” 구원받으려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하느님이 매우 인색하셔서 하늘나라의 문을 작게 만드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실제로 큰 도전은 예수님의 고단한 삶과 마지막으로 십자가 위에서 억울하게 생을 마감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분이 우리의 모범이고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하니 그분 뒤에서 머뭇거리지 않을 사람은 몇 명 안 될 거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자신을 버리고 매일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진다. 그런데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 인류를 위한 희생은 예수님의 몫이고 나의 몫은 내 십자가만이고 혹시 그것이 이웃에게 도움이 된다면 다행이고 감사할 일이다. 이미 우리 각자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산다. 일상의 수고와 자신과 이웃의 좀처럼 교정되지 않는 약점 그리고 때때로 주어지는 이웃을 위한 작은 희생의 기회 등이 그것이다.

그런 것들이 어깨 위에 얹혀있지만, 많이 단련돼서 견딜만하다.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은 노력한 만큼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현실인 것 같다. 사회 제도적인 것도 그렇지만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가까운 이들의 무지와 무관심 또는 반대와 비난이다. 예수님은 그런 것들이 주어질 것을 다 아시면서 꿋꿋하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겪으셨던 죽을 것 같은 번민, 십자가 위에서 받으셨던 비난과 모욕은 아마 당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던 것 같다. 그러니까 예수님도 잠시 흔들리셨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분은 사람이 아니다.

예수님이 그런 도전과 유혹을 견디고 이기게 한 것이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사랑이라고 알고 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느님을 사랑하셨지만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다. 하느님 사랑은 우리가 이놈의 불의한 현실 세계를 초월하게 한다. 세상의 불의 부당 부정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지만, 그 투쟁에 빠지지는 않는다. 이런 우리들을 두고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표현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로마 8,28-29).” 주님의 멍에는 편하고 그분의 짐은 가볍다(마태 11,30). 하느님 사랑이 그 멍에고 나의 수고와 인내가 그 짐이다. 이런 이들이 없었다면 인류의 역사는 시작되자마자 얼마 못 가 끝나버렸을 거다. 오늘도 주님은 당신의 양들을 십자가의 길로 부르신다. 그 부르심이 반가울 리 없지만, 그 길 말고 다른 길이 없고 이왕에 따라가기로 했으면 기쁘게 따라간다.

예수님, 감당할 수 없는 짐을 맡기셨을 리 없고 제 능력은 유한하니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나머지는 주님께 맡깁니다. 제 노력이 필요하신 게 아니라 구원을 위한 십자가를 제게 주십니다. 오늘도 주님 뒤를 따라갑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불평과 걱정이 제 발걸음 흔들지 않게 저를 지켜주시고 흔들리더라도 끝까지 가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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