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다해 12월 21일 뜻밖의 선물(+MP3)

다해 12월 21일 뜻밖의 선물

오래전 토사곽란으로 응급실로 실려 갔었다. 팔뚝이 얇아질 정도로 위아래로 물을 많이 쏟아서 정말 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검사받아야 한다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게 했다. 응급실은 환자들로 북적였고 한 형제가 보호자로 옆에 있었지만 나는 외로웠다. 아픔 괴로움 불안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그렇게 혼자 외롭게 괴로워하고 있을 때 수련의로 보이는 한 사람이 다가왔다. 신원을 확인하거나 또 다른 검사를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많이 힘드시죠. 조금만 더 참으세요. 처방전 나오고 주사 맞으면 곧 편안해지실 거예요.’ 그는 나에게 천사고 구세주였다. 그는 나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주사가 아니라 나의 아픔과 외로움을 알아주는 그 마음이었다. 공감, 위로, 희망이었다. 갈증과 괴로움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더이상 외롭지 않았고 견딜 힘이 생겼다.

한 달 훨씬 전부터 버스터미널 앞 교차로 앞에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졌고 라디오에서는 연신 캐럴을 들려준다. 왜 그러는지 안다. 지금 우리는 모두 힘들고 우울하고 외롭다. 나도 그러니 너를 공감하고 위로하고 희망을 말하지 못한다. 참 좋은 하느님이 이런 벌을 내리셨을 리 없다. 이 모든 일이 우리들 모두의 잘못인 줄 안다. 그래도 책임추궁이나 질책을 듣기보다는 누군가 와서 이런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우리를 좀 빼내 줬으면 좋겠다.

크리스마스트리가 아니라 그 아래 수북하게 쌓아놓은 선물들이 성탄절의 상징이다. 아기 예수님은 우리에게 선물, 뜻밖의 선물이다. 그래서 성탄의 정서는 기쁨이고 감격이며 지극한 고마움이다. “신랑이 신부를 반기듯 너의 하느님께서 너를 반기시고(이사 62, 5)”, “나의 애인이여, 일어나오. 나의 아름다운 여인이여, 이리와 주오(아가 2, 10).”라고 여인에게 속삭이듯 말씀하신다. 자기를 안아주고 자신만 들을 수 있게 사랑한다고 속삭여주기를 바라는 여자의 마음은 잘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신부를 맞이하는 신랑의 뜨거운 마음은 알 것 같다. 하느님은 날 그렇게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사랑하신다.

우리는 전해 들은 복음을 전한다. 우리는 구세주도 예언자도 아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구원받아야 하는 죄인이고 치료받아야 하는 아픈 사람이다. 이 또한 지나가는 것인 줄 알지만, 그 지나가기가 버거우니 서로 위로하고 격려한다. 마리아는 복음을 들은 첫 사람이고, 그 복음을 몸에 지니셨다. 그분의 몸이 복음이 되었다. 우리의 마음과 몸에도 복음이 스며들어 있다. 말뿐인 위로와 희망도 나쁘지 않다. 찌푸리고 어두운 얼굴보다 좋다. 동네 밖으로 뛰쳐나가 사람들을 만나기 어렵지만 바로 내 옆에 위로와 희망을 간절히 바라는 외로운 사람이 있다.

예수님, 주님은 선물, 뜻밖의 선물이고 저는 참으로 염치없는 죄인입니다. 그 선물은 연인의 뜨거운 사랑보다는 부모의 깊은 사랑에 가까운 줄 알지만 이번 성탄에 우리는 그 뜨거운 사랑의 선물을 받고 싶습니다. 신적인 사랑 말고 인간적인 사랑, 위로와 격려 같은 따뜻함 말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지치고 우울한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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