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이종훈] 다해 12월 23일 엘리사벳(+MP3)

다해 12월 23일 엘리사벳

즈카르야는 사제였고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아론의 자손이었다. 이 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롭고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루카 1, 5-7). 그 당시 자녀는 곧 하느님의 축복이라는 것이 상식이었다. 하느님의 사람 사제 부부가 축복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수치를 넘어 고통이었다.

특히 엘리사벳에게 더 큰 고통이었다. 부부관계는 은밀한 내용이라 부부만 안다. 겉으로는 둘 사이에 아무 문제없고 모든 계명을 충실히 지켜 흠잡을 데 없지만, 결정적으로 그 여인은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한다고 여겨졌다. 사람들은 그 여인이 하느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어도 애써 못 들은 척하며 지내야 했다.

남편 즈카르야가 주님의 성소에서 천사를 만난 뒤에 임신이 됐다(루카 1, 23-24). 요즘 말로 하면 불임의 원인이 아내가 아니라 남편이었던 것 같다. 남편의 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거다. 즈카르야는 천사를 만난 날부터 아기 이름을 지을 때까지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다. 긴 침묵 속에서 지냈다. 그는 부부 사이에 일어난 큰일을 두고 묵상하고 자신을 성찰하며 요즘 말로 긴 피정을 했다. 그는 비웠고 하느님은 그 비워진 곳을 채우셨다. 그는 하느님의 계명을 지켰지만, 하느님을 반만 믿었던 것 같다.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고 게다가 인간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어서 시간이 지나면 이루어질 수 있는 일도 믿지 못했다(루카 1, 19-20). 때가 차면 이루어질 하느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던 자신을 고백했다.

‘엘리사벳’의 뜻은 ‘나의 하느님께서 다짐하신다. 나의 하느님은 약속이시다. 나의 하느님은 넉넉하신 분이시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 하느님은 충실하시기 때문에 약속을 꼭 지키신다. 시간이 많이 흘러도 나의 선한 청원을 다 기억하고 때가 차면 이루어주신다. 나는 불충실하고 간절히 청했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지만, 하느님은 다 기억하시고 때가 차면 이루어지게 하신다. 엘리사벳에게 그 아이는 하느님의 축복이었고 하느님이 자신이 겪은 치욕을 다 알고 계셨다는 증거였다. 그래서 그에게 그 아기는 ‘하느님의 은혜’, ‘하느님은 자비로우시다’는 증거, 즉 요한이었다. 그 이름이 바로 성소에서 가브리엘 천사가 남편 즈카르야에게 알려 준 이름이었다(루카 1, 13). 즈카르야는 아기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증언하며 긴 피정을 마쳤다. 그 둘은 요한 안에서 서로 새로운 모습으로 하나가 됐다.

예수님, 선하고 의로운 사람은 모두 한곳에서 만나게 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그곳이 주님이고 하늘나라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다양해졌어도 진리는 하나입니다. 잘 고르고 뽑는 기술이 아니라 주님 말씀에 맛들이고 그것을 잘 알아듣는 은총을 베풀어주십시오.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질 소음들에 얼굴 찌푸리지 않고 때가 차면 이루어질 주님의 일에 마음을 두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렇게 어머니가 옆에 계시고 또 앞서가시니 저는 길을 잘못 들 걱정이 없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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