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김대열] 20130915 연중 제2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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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15일 연중 제24주일 복음묵상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루카15,1-10)

 

오늘 복음으로 선정된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비유나 탕자의 비유가 전하는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인생이라는 나그네길을 끝마치는 순간까지 우리 모두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이 아니라, 길을 잃고 헤매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이며, 아버지의 사랑을 배신하고 모든 것을 탕진했을 때 살려달라고 아버지를 찾는 탕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메시지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 잃어버린 양을 찾아 헤매는 목자의 마음이, 그리고 집 떠난 아들이 돌아오자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표현한 아버지의 마음이 바로 하느님의 마음이라는 메시지다.

 

그런데 이 쉬운 메시지를 우리는 알아듣지 못하는 냥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교만이라는 어리석음 때문이다

우리의 교만은 늘 자신은 아흔아홉 마리의 양의 무리 중 하나일 것이라고, 최소한 집 나간 둘째 아들이 아닌 아버지의 뜻에 충실했던 큰 아들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교만은 진실을 못 보게 하며, 그 영혼을 더욱 그분과 멀어지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영적 겸손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하느님께 청해야만 한다.

(전에 겸손에 대해 묵상했던 내용을 옮겨본다)

 

무엇을 겸손이라고 하는가?

복음서를 통해서 예수님께 야단을 맞는 이들은 대부분 교만한 이들이었음을 우리는 안다.

 

겸손은 어디에서 오는가? 분명한 것은 인위적인 것은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학습된 것도 거짓일 확률이 크다. 이는 상대를 의식해서 만들어진 겸손은 거짓이라는 말과 통한다.

특히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보여지는 것은 만들어진 거짓 겸손일 수밖에 없다.

 

겸손한 마음은 저절로 나와야 한다.

저절로 나온다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

어쩌면 무척 간단한 이치일 지도 모른다.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다. 가득 차 있다는 말이다.

무엇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일까?

그것은 삶의 시행착오 속에서 깨달은 모든 것에 대한 진실이다.

하여, 겸손에는 삶이 담겨 있다.

우리 신앙인의 눈으로 볼 때는 그것은 하느님께서 깨닫게 해주신 삶의 의미이고 우리가 걸어가야 할 참된 삶이다.

 

그분 안에서 세상에 대한 올바른 관조가 가능할 때 겸손은 내 것이 된다.

내가 미워하게 된 그 사람 안에서도 그 사람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겸손해진다.

모든 아픔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겸손해진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관계를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올바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겸손해진다.

이러한 깨달음은 그분께서 주셔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한다.

겸손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이 삶을 깨닫게 해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그러면 겸손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물이 될 수밖에 없다.

 

거짓 겸손은 비굴하다. 하지만 참 겸손은 비굴할 수가 없다.

진실로 겸손한 이들을 만날 때, 우리는 위로를 받고 치유를 받고 살아가야 할 지표를 얻게 된다.

나를 아는 이들이 나를 통해서 위안을 받는가?

나를 아는 이들이 나를 통해서 용기를 얻고 그분을 찾으려 하는가? 뒤돌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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